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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성 담론의 죽음에 관한 사변들

posted Nov 23, 2022, 5:59 PM by hyoo@crevate.com   [ updated Nov 25, 2022, 12:07 AM]
(이 글은 '창의성 담론이 죽었다'라는 당돌한 현실 인식을 전제로 한 글입니다.
발산하듯이 쓴 글로서, 논리적 비약이나 상처가 될 만한 내용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IDEA WALL에 창의성에 관한 제 의심과 발산 과정을 한번쯤 솔직하게 드러내고 싶어 쓴 글임을
감안하시어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2022.11.23. 형준)

1.
2000년대 후반에서 약 10년에 걸친 기간, 100대 기업 인재상에서 ‘창의성’은 후퇴하고 ‘소통, 협력’이 떠올랐다. 우리나라 창의성 담론은 예전만큼의 지위를 갖지 못한다. ‘창의적 인재’라는 말은 사실상 ‘인재’라는 말과 별 다를 바가 없다. 너도나도 ‘창의성’이라는 말을 쓰다 보니 그 말의 뜻이 너무나 넓어지고 흐릿해졌기 때문이다.

2.
현재 그나마 창의성 담론이 몸담은 곳은 영재 교육 분야뿐이다. 어떤 담론이 오직 대한민국의 교육 분야에서만 생존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것이야말로 그 담론이 역사 속으로 사라질 때가 임박했음을 뜻한다. 대한민국 교육 분야는 식어가는, 혹은 상해 가는 모든 담론이 마지막 여생을 보내는 곳이기 때문이다. 내 자식, 내 학생들에게 무엇이든 다 해주고 싶은 어른들은 세상의 온갖 것들을 끌어다가 교구로 활용한다. 그들은 극성(劇性)이기 때문에 죽은 담론도 강하게 끌어당기는 극성(極性)을 띤다(교육에 대한 성토는 이쯤 하자).

3.
창의성 담론은 왜 이처럼 죽어가는가? 사람들의 창의성이 떨어졌기 때문인가? 아니다. 사람들이 예전보다 덜 창의적이라는 증거는 없다. 오히려 이렇게 고도화된 사회에서도 창의적 발명과 발견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보면, 창의성의 총량은 커지고 있다고 보는 것이 맞다. 사람들은 갈수록 더 많은 창의성의 결과물들을 지켜보며, 인류의 창의적 발전을 예찬할 것이다.

4.
창의성 담론 쇠퇴의 원인은 사회가 아닌 담론 자체의 특성에 있다. 창의성 담론은 폐쇄적인 담론이기 때문에 죽어가고 있다. 이를 위해 잠시 세상을 단순화하여 바라보자. 세상을 이분법적으로 보는 것이 위험하다지만, 현상을 분석하는 데에 이분법만큼 유용한 것이 없다. 세상을 엘리트와 비(非)엘리트, 혹은 유식자와 무식자로 구분해서 생각해보자. 창의성 담론은 유식자의 담론인가, 무식자의 담론인가? 당연히 유식자의 담론이다. 유식자의 담론은 무식자에게 극단적으로 폐쇄적이다. 사회 구성원 모두가 공유할 수 없는 담론은 자연히 다른 담론과의 경쟁에서 패배하여 링에서 내려오게 되어 있다.

5.
나는 비(非)엘리트들, 즉 무식자들이 창의적일 수 없다는 식의 얼토당토않은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나는 창의성의 총량을 측정한다면, 엘리트와 비엘리트 집단 간에 큰 차이가 없다고 믿는다. 그러나 창의성 담론은 분명 유식자의 담론이다. 왜냐하면 창의성 담론은 ‘인지적 특성에 관한 담론’이므로 메타인지적인 담론이기 때문이다. 무식자보다는 유식자의 메타인지 능력이 우월할 수밖에 없다. 유식자는 무식자보다 지식이 많으므로 자신의 인지 과정을 객관화하여 생각하고 표현하기 수월하다. 무식자는 세상의 사물들에 관한 담론을 형성하고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는 유식자와 별 다를 바 없지만, 인간의 인지능력에 관한 담론, 즉 메타인지적 담론을 형성하고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는 유식자보다 크게 불리할 수밖에 없다.

6.
창의성 담론이 유식자의 담론일 수밖에 없는 원인은 창의성 자체의 특성에도 있다. 길포드가 주장한 창의성의 다섯 가지 요소를 살펴보자. ‘유창성, 융통성, 독창성, 정교성, 민감성’이다. 이 가운데 창의성 담론을 유식자의 담론으로 만드는 요인은 ‘민감성’이다. 민감성은 감각을 예민하게 발휘하여 숨어 있던 문제를 포착하는 특성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민감성은 유식자가 무식자보다 뛰어날 수밖에 없다. 그 원인은 첫째, 유식자는 지식이 많아서 현실의 문제를 자신의 문제로 해석하기 수월하다. 둘째, 유식자는 무식자보다 매체 이해도가 높고 사회정치적 문제에 관심이 많아서 자연스럽게 민감성을 훈련할 기회가 많다.

7.
정리하면 창의성 담론은 (1)메타인지적 담론이며 (2)창의성의 구성요소인 ‘민감성’ 때문에 유식자만의 담론이다. 유식자는 자신들이 창의적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며, 자신들의 인지 특성 가운데 창의성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이 때문에 창의성 담론은 ‘유식자의, 유식자에 의한, 유식자를 위한’ 담론이 된다. 이 담론에서 (자기가 창의적인지 어떤지조차 모르는)무식자는 배제되거나, 계몽의 대상으로 여겨진다.

8.
창의성 담론이 죽어가는 것은 그것이 본질상 유식자의 폐쇄적인 담론이기 때문이다. 무식자의 목소리는 창의성 담론에 편입되기 어렵다. 대신에 일부 ‘창의적인 무식자’들의 이야기는 확대 재생산되어 창의성의 교과서에 실린다. 창의성 담론이 보편적이라고 믿는 사람들, 즉 자신들처럼 무식자들도 창의성에 큰 관심을 가질 것이라고 믿는 유식자들은 스티브 잡스와 아오모리 현 농부들의 이야기를 같은 선상에 놓으며, ‘봐라! 누구나 이렇게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지 않는가?’라고 외친다. 이는 그들이 창의성을 단련하는 보편적 훈련 방법이나 교구를 강조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들은 무식자도 유식자처럼 창의성 담론의 테이블에 앉을 것이라 믿지만, 테이블에 앉는 사람들은 전부 그들과 같은 유식자이다. 따라서 창의성 담론은 결코 무식자에게 확산되지 못한다. 그들은 자신이 창의성 담론의 부활을 준비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들의 계몽 활동은 창의성 담론의 죽음을 굳이 반복하여 확인하는 의식일 뿐이다. 그들에게 나쁜 의도가 없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9.
창의성 담론이 보편적이라고 믿는 사람들, 즉 창의성 담론을 사회 전체적으로 확산시킬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이제 창의성 담론이 죽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창의성이라는 이름으로는 사회 전체의 공감대를 얻지 못한다. 그것은 그들의 잘못이 아니라 창의성 담론의 한계이자, 창의성 자체의 한계 탓이다. 인간이 이름 붙이는 모든 것에는 한계가 있으며, 이는 ‘창의성’에도 똑같이 적용된다. ‘창의성’은 모든 것의 해답일 수 없다.

10.
그러면 어쩌라는 말인가? 창의성 담론의 주창자들이 이제는 죄다 소통 담론의 주창자로 옷을 갈아입어야 한다는 말인가? 분명히 소통 담론은 창의성 담론보다 훨씬 포용적인 것처럼 보이기는 한다. 하지만 그조차도 내가 알지 못하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11.
어차피 완벽한 담론은 없다. 무식자들이 끝내 창의성 담론에 공감하지 못했듯, 불통자들/권위주의자들은 끝끝내 소통 담론에 참여하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도 소통 담론은 왜 쉽게 죽지 않는가? 대한민국의 불통자들/권위주의자들이 매우 유능해서, 자신들이 소통 담론에 진심으로 적극 참여하고 있다고 성공적으로 홍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권위주의자들은 실상 소통 담론의 장에 불출석하고도 출석 인정을 받고 있다. 이처럼 담론이 보편성을 지니는 방법 가운데 하나는 권위에 (자의든 타의든) 영합하는 것이다. 하지만 권위에 영합할만한 가치들의 주창자는 이미 너무 많다. 창의성 담론 주창자들이 이 핏빛 레드오션에 낄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12.
결국 창의성이든, 소통이든, 혹은 다른 어떤 가치로 사회 통합이나 발전을 주장하든, 담론을 확산시키는 정도(正道)는 현실에서 그러한 가치가 제대로 먹히는지, 충분히 많은 사람을 포용하는지 살피는 것이다. 그저 ‘내 말이 맞으면 사람들이 알아줄 것이다’라는 낙관만으로는 부족하다. 모쪼록 창의성 담론 주창자들이 성공적으로, 그리고 자연스럽게 옷을 갈아입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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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g Youn PAK
Dec 11, 2022, 5:05:36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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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주장 하는 것인가? 창의가 죽은 담론이니 so what? 1. 창의가 죽은 담론인가? 창의성은 2020년 기준 더 중요해졌음. 학원가에 써 먹을 정도로 확산된 것 아닌가? 2. 창의가 죽은 담론이라 치자. 그래서 다른 용어를 찾자? 창의의 다른 가치를 사람들에게 어필하자? 무엇을 주장하는 것인가? 3.전개 과정에서 말그대로 문맹률이 높던 시절 무식자와 유식자를 구분할 수는 있어도 어떤 논의에서 무식자와 유식자를 구분하는가? 그것이야 말로 엘리트주의아닌가? 무식자와 유식자는 구분 기준은? 학력인가? 학벌인가? 창의, 혁신 이런 단어를 많이 들어서 그냥 안다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오염된 것이기에 주목도가 떨어질 수는 있어도 창의성 담론이 사담이라는 것은...문제는 아직도 구호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실제적인 것은 하나도 없는 것이 더 문제 아닌가? 각양각색. 롱테일이 무엇인가...모두를 끌어안는 논의를 펼치자는 것이 아니라 그 가치를 믿는 사람들을 이해시키고 뭉치는 게 나은 것 아닐까? 창의를 대체할 다를 용어를 찾자에는 충분히 공감이 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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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g Youn PAK
Nov 25, 2022, 5:00:37 AM
공감. 다른 용어가 필요한 듯. 창의성은 영역 특수성. 바올린 창의성이 생물학 창의성에 도움이 되는가? 창의성은 자기 분야의 전문 영역에서 발휘된다. 이와는 별개로 혁신은 어떻게 확산되는가? diffusion of innovatioins. innovator, early adopter, early majority, late majority, laggard...아이디어, 특정 채널을 통한 커뮤니케이션, 시간, 사회체계 이 4가지라고 Rogers는 말하는데...무엇인가?와 어떻게 확산시킬 것인가? 구분해서 생각하면 좋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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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g eun Yang
Nov 25, 2022, 4:38:58 AM
창의를 무엇으로 정의하냐에 따라 달라질 것 같아요. 개인이 쌓은 인풋을 연료로 한 새로운 생각이라면, 유식자나 무식자나 모두 창의적일 수 있죠. 다만 그것이 사회적으로도 창의적인가? 비즈니스적으로도 창의적인가? 특정 분야, 세상의 기준을 가져왔을 때 차이가 발생하는 것 같아요. 어떤 정보를 보았을 때 이를 분해하고, 추상화하고, 새로운 구조를 만들고, 일반화하는 과정을 창의적 사고의 과정이라고 하면, 지식의 차이가 있어도 누구나 가능하겠죠. 그러나 나만의 창의를 세상에서 창의라 불러주지 않으므로... 유식자들만의 논쟁처럼 보일 수 있을 것 같네요. 재미 있는 주제네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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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준Yoo HyeongJun
Nov 23, 2022, 11:31:45 AM(edited: Nov 23, 2022, 11:32:00 AM)
대학원 다니는 동기에게 이 글을 보여주니 다음과 같은 피드백이 오네요.

1. 이제 창의성은 인재가 아닌 인간의 기본 소양이며, 당연히 갖춰야 할 것으로서 보편화된 가치가 된 것이지, 중요도가 퇴색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려움. 즉 창의성이 덜 중요해진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이 서로를 '당연히 창의적이겠지'라고 가정한다는 뜻임.

2. 창의성이 교육 담론에서 아직 살아있는 것은, 죽은 담론이라서가 아니라, 초기 사회화 단계에서부터 강하게 주입되는 가치이기 때문임. 성인이 되고 나서는 그 중요성조차 인지하지 못하게 되는 것일 뿐임. 다 큰 성인에게는 창의성을 강조할 필요가 없어진 것임.

3. 무식자가 무식자인 이유는 참 창의성과 거짓 창의성을 알아보는 메타인지가 부족해서임. 무식자는 '내가 더 창의적이다'라고 착각하여, 참된 창의성을 배척하고 거짓 창의성에 매몰되어 자기 방식을 고집할 뿐임.

4. 문제의식의 포인트를 바꿔야 함. '창의성이 중요한가'가 아니라, '창의성이 기른다고 길러지나'로.

5. 창의성과 지능, 학력은 그다지 상관관계가 높지는 않을 것임.

=> 이 글을 쓰고, 동기에게 피드백 받는 과정 자체가 창의성에 대해 더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