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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15-자유 (7월업로드)

posted Mar 15, 2022, 4:34 PM by hyoo@crevate.com   [ updated Jun 30, 2022, 11:55 AM by Sung Youn PAK]

[1] 뼈대 세우기


자유롭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창의적인 생각은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나온다고들 한다.
어떤 식당은 우유부단한 한국인들을 위해 '주방장 맘대로'라는 메뉴까지 적어두기도 한다.
하지만 이 메뉴를 선뜻 주문하는 사람을 본 적은 없다.
끊임없는 선택과 책임의 연속인 오늘날, 자유는 마냥 좋기만 한가?

자유의 사전적 정의는 '외부적인 구속이나 무엇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대로   있는 상태'라 한다. (https://ko.dict.naver.com/#/entry/koko/c35cb8c05b36448781c64c89309ecd11)

한자로는 스스로 자自에 말미암을 유由를 쓰는데, 둘 다 상형문자이다. 自는 본래 얼굴의 중심인 코를 본뜬 자로서 '자기, 스스로'라는 뜻으로 확장되었다 하며, 由는 본래 등잔을 본뜬 자로서 지금은 '말미암다, 꾀하다' 등 다양한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한다. (https://hanja.dict.naver.com/#/entry/ccko/b91451f5ab0f409db537e525cd6172e1)

자유는 명사이지만 그 자체로 주어+동사의 의미를 포함한다고 볼 수 있다. 즉 (다른 누구도 아닌 행동의 주체로서) '자신'이 마음대로 무언가 '한다'라는 것이다.

자유를 뜻하는 영단어에 freedom과 liberty가 있지만 좀 더 일상적인 freedom을 보자. freedom은 물론 형용사 free를 명사화한 것으로 14세기경부터 '독단적, 전제적 통제로부터의 면제, 시민의 자유'라는 뜻으로 쓰였다 하며, 형용사 free는 13세기경부터 '장애물이 없는'이라는 뜻으로 쓰였다 한다. 

자유와 비슷한 말로는 자재自在가 있다. 있을 재在를 쓰니 '저절로 있음'이라는 뜻이다. 동적인 由보다는 한결 정적인 느낌이다. 언뜻 산, 바다와 같은 자연自然의 우직함도 느껴진다.
자유와 합쳐서 자유자재라고도 쓴다. 거침없이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뜻이니, 자유를 더욱 강조한 말이다.
'존재'가 '행동'하는 것인데 어찌 자재자유가 아니라 자유자재인가? 하기야 '자유'라면 이미 '자재'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으니, 자유자재의 자재는 그저 강조를 위한 덧말에 가까운 것일지 모른다.

자유의 반대말로는 결박, 구속, 규제 등이 있다. 결박은 움직이지 못하도록 묶는 것, 구속은 행동이나 의사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 규제는 규칙 등으로 일정한 한도를 넘지 못하게 막는 것이다.
막고 묶는 것의 반대가 자유라는 말이다. 그 울타리를 허물고 매듭을 푸는 것이 자유라는 말이다.

이상에서 볼 때 자유自由에 대해 두 가지 함의를 도출할 수 있다. 첫째, 애초에 행동의 주체인 自가 존재하지 않고서 자유는 아무 의미가 없다. 즉 자유는 언제나 '누군가의 자유'여야만 한다.
둘째, 자유는 장애물을 허무는 것이니 동적이며 실천적인 개념이다. 자유로운 실천이 없으면 자유는 아무 의미가 없다. 울타리를 허물 힘이 있어도, 실제로 허물지 않는다면 그것은 자유로운 상태가 아니다.

1. 자유를 소극적 자유와 적극적 자유로 구분하곤 한다. 소극적 자유가 전통적인 개념이고, 복지국가가 들어서면서 자아 실현이라는 의미로 확장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유와 자아 실현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은가? 자유로운 행위 중 일부의 목적이 자아 실현이 될 수 있을 뿐이다. 또, 자유가 과연 소극적인 개념인가? 자유야말로 자신을 묶은 사슬을 벗어던지는 행위를 가능케 하는데, '소극적 자유' 자체가 지나친 상대론 아닌가?

2. 어디까지가 정말 본질적인 自의 의지이며 어디부터가 학습에 따른 결과물인가? 학습된 결과물조차 自의 의지라고 본다면, 늑대소년의 진정한 자유를 위해서는 그를 늑대 무리로부터 빼와서는 안 되는 것인가? 아니다. 자유는 극히 인간적인 개념이라는 점에서 새로 출발해야 할 듯 하다. 답답함을 해소하고 눈앞의 장애물을 허물려는 짐승의 본능은 수만 년간 이어져 왔는데, 전제군주의 압제로부터 벗어나려는 욕구나 행위조차 이와 같이 자연적이라는 견지에서 '자유' 개념은 시작됐다. 즉 자유는 앞서 말했듯 '누군가의 자유'일 뿐만 아니라, '어떤 인간의 자유'라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3. 자유의 주체는 어떤 인간이다. 그는 울타리를 허무는 상상을 하며 자유 의지를 갖고, 울타리를 허무는 실천을 하며 자유로워진다. 그러면 이 의지의 발생과 실천에 다른 인간이 개입할 여지는 없는가? 이제 어려운 철학적 문제에서 다소 비껴 서서 이렇게 물어보자. 기업은 소비자를 어떻게 자유롭게 할 수 있는가? 기업이 자기 제품을 사라고 설득하는 커뮤니케이션의 과정에서 있을 수밖에 없는 여러 가지 잡음들은 과연 소비자를 자유롭게 하는가?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라는 말이 단순한 오지랖이나 꼰대질이 아니라 진짜 '자유로운 세계로의 초대'처럼 달콤하게 느껴진 이유는 무엇인가?

4. '자유'로운 경험을 팔기 위해서는 소비자를 둘러싼 여러 '구속'을 발견해야 한다. 그 구속을 제대로 지적하고, 구속당하고 있다는 사실에 소비자가 공감할 때 '자유 마케팅'은 성공한다 -> 소비자가 '자유'를 인지하기 위해서는 일단 자유가 아닌 상태, 즉 구속 상태라는 것를 스스로 인지가 필요하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라는 문구를 보면 앞에서 구속 상황을 인지시키고 있기 때문에 자유가 더 극명하게 드러난다. 

자유가 더 극도로 커지면 방종? 자유가 없어진다면 뭘까? 
일분일초도 쉬지 않고 빡빡하게 학습 계획을 짜는 사람은 본인 의지로 그렇게 계획표를 짰으면 자유로운 것인가? 본인이 한다는 측면에서는 자유 아닌가? 

5. 자유 마케팅의 강도를 생각해볼 수 있다. 즉 상품의 종류에 따라 어떤 상품은 강한 자유에, 어떤 상품은 약한 자유에 들어맞을 수도 있다. 강한 자유란 일상으로부터의 일탈, 전혀 생각지 못한 도전 등이다. 여행, 관광, 레저, 스포츠 등이 강한 자유 마케팅이다. 반면 약한 자유란 일상 속에서 누리는 자유이다. 소확행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일상을 벗어나지 않기에 쾌감은 적지만, 무엇보다도 '안전하다'. 몸을 과격하게 움직이거나 대중교통을 몇 시간동안 기다리지 않고도 누릴 수 있다. 패션, 게임, 영화관 등이 약한 자유 마케팅이다.
예컨대 요즘은 지상파에서도 많이 나오는 모바일 게임 '삼국지' 광고를 떠올려보자. 중년 남성 연예인 세 명이 현실에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갑자기 게임 속 병사들을 거느리는 장수로 변신해 전략으로 다툰다. 이 광고에서 중년 남성들은 그들을 구속하는 일상에서 편리하고 안전하게 벗어나 게임 속 세상에서 장수가 된다. 그들은 비록 배우자가 친정에 갔을 때 다함께 낚시나 등산을 갈 때만큼 자유롭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일상 속에서 틈틈이, 짬을 내어 자유로워질 수 있다. 약한 자유 마케팅은 구속에서의 완전한 이탈보다는 환상 세계로의 전환이나 망각이라는 테마로 구성된다.
강한 자유, 약한 자유가 처음 들어보는 개념이어서 잘 와닿지가 않음. 구속, 억압을 벗어나기 위해서 꼭 현실에서 탈피만 있는 것은 아니고 상상을 통한 환상 세계의 전환이나 망각으로도 가능하고 메타버스도 이러한 자유에서 나온 거? 

6. '구독경제의 피로함'에 관한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반찬 배달 서비스를 한 달간 신청했는데, 열흘 지나니 그 집 반찬을 더 먹고 싶지 않다. 하지만 돈이 아까우니 중도 포기하기는 싫다. 이런 현상이 보편적이라면, 구독경제(또는, '매일 아침 문앞에 배달된 반찬을 받아보는 경험'이라는 점에서 경험경제) 체제에서 소비자들은 시시때때로 변하는 자신의 자유의지를 거역하면서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내일의 나와 오늘의 내가 같은 욕구를 지니고 있을지 오늘의 내가 어떻게 아는가? 기업은 소비자를 자유롭게 하기는커녕 옭아매고 있는 것이 아닐까?
-> 기업이 소비자를 자유롭게 하려면 다양한 옵션을 제공해야 하고, 되도록 세밀하게 커스터마이징된 상품을 제공해야 한다. 구독경제, 경험경제 체제에서 소비자는 잘 포장된 상품 하나하나가 아니라 어떤 네러티브 가운데서 맥락의 파편을 구매한다. 그런데 그 맥락이 시간에 따라 달라질 우려가 있다면, 기업은 그 점을 사전 고지하고 소비자가 경험할 지 모르는 불편을 해소하려 힘써야 한다. 왜냐하면 소비자A가 오늘 자유를 위해 구매한 그 상품이 내일은 그를 구속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너무 기업을 강제로 연결시킬 필요는 없음. 자유 의지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인가? 자유와 계획은 상충하는 개념인가? 자유는 늘 즉흥성을 전제로 하는 것인가? 여러가지 이야기들이 있을 때에는 사람들이 따라오려면 질문을 던져주고 그 질문을 따라가게 하는 것도 방법일 것 같습니다.  

[2] 글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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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롭게 선택하길 바라는 사람은 많지만, 책임을 지고자 하는 사람은 적다.

끊임없는 선택과 책임의 연속인 오늘날, 자유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

 

자유의 사전적 정의는 '외부적인 구속이나 무엇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태'이다.

 

한자로는 스스로 자에 말미암을 유를 쓴다. 둘 다 상형문자이다.

는 본래 얼굴의 중심인 코를 본뜬 자로서 '자기, 스스로'라는 뜻으로 확장되었다 하며, 는 본래 등잔을 본뜬 자로서 지금은 '말미암다, 꾀하다' 등 다양한 의미라고 한다.

즉, 자유는 명사이지만 그 자체로 주어+동사의 의미를 포함한다. '자신'이 마음대로 무언가 '한다'라는 것이다. 즉, 마음만 먹어서는 안 되며 무언가 행동으로 옮겨야 자유라 할 수 있다.

 

자유를 뜻하는 영단어인 freedom은 형용사 free 뒤에 dom을 붙여 명사화한 것으로 14세기경부터 '독단적, 전제적 통제로부터의 면제, 시민의 자유'라는 뜻으로 쓰였다 하며, 형용사 free13세기경부터 '장애물이 없는'이라는 뜻으로 쓰였다 한다. 그러다 1580년대 들어 '무료로 제공됨'이라는 뜻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자유의 반대말로는 결박, 구속, 규제 등이 있다.

결박은 움직이지 못하도록 묶는 것, 구속은 행동이나 의사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 규제는 규칙 등으로 일정한 한도를 넘지 못하게 막는 것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가로막고, 묶는 것의 반대가 자유라는 말이다.

즉 그 울타리를 허물고 매듭을 푸는 것이 자유라는 말이다.

 

이상에서 자유自由에 대해 두 가지 함의를 도출할 수 있다.

첫째, 애초에 행동의 주체()가 존재하지 않고서 자유는 아무 의미가 없다.

즉 자유는 언제나 '누군가의 자유'여야만 한다.

그 누군가는 울타리를 허무는 상상을 하며 자유의지를 갖고, 실제로 허물며 자유로워진다.

 

둘째, 자유는 장애물을 허무는 것이니 동적이며 실천적인 개념이다.

자유를 향한 의지나 실천이 없다면 자유는 의미가 없다.

잘 세뇌된 서커스 코끼리를 생각해보라. 울타리를 허물 힘이 있어도 실제로 허물지 않는다면 그것은 자유로운 상태가 아니다.

 

한편 자유와 관련된 개념으로 방종은 무엇이고, 자율은 무엇인가?

방종은 '아무 거리낌 없이 제멋대로 함부로 행동함'이며, 자율은 '스스로 자기의 방종을 억제함'이다. 


방종은 언뜻 보면 자유와 비슷하지만, '함부로' 행동한다는 제약이 붙어있다. 자유로운 행위 중에서도 함부로, 즉 충분한 고민 없이 한 행위만이 방종이다.

그러면 무엇을 충분히 고민하고 행동해야 자유로우면서도 방종이 아닐 수 있는가? 그것은 바로 '자율'이라는 말이 드러내듯 '율(律)' 즉 사회적 규칙이다.

사회가 만들어낸 규칙은 개인에게는 때때로 울타리가 되기도 한다. 허나 그 울타리를 허물고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순간, 그 행위는 방종이 된다.

정리하면, 자유 자체는 누군가 울타리를 허무는 일로서 중립적인 개념이나, 그 울타리가 규칙인 경우 '방종'이라는 부정적인 개념으로 따로 분류한다.


어떤 행위는 자유롭고, 어떤 행위는 자유롭지 않은가? 

사회적 규칙을 지키면서 내 뜻대로 하는 모든 행위는 자유로운가? 이는 '나'나 '울타리'를 어떻게 정의하는지에 따라 달라지는 어려운 문제이다.


주관적, 감정적 측면에서 일반적으로 어떤 경우에 '자유로운 기분'이 드는지는 상상할 수 있다.

물론 일상의 굴레나 구속을 벗어났을 때 드는 '해방감'도 여기에 속한다. 간만에 휴가를 얻어 여행을 떠났을 때, 지옥 같았던 고등학교를 졸업했을 때...

이런 해방감을 누릴 수 있는 기회는 몇 년에 한번 있을까 말까이다.


그러나 어떤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서 '내가 자유롭게 선택했다는 기분'은 꽤 자주 느낄 수 있다.

오늘 저녁은 혼밥인데, 떡볶이를 먹을까, 피자를 먹을까? 두 메뉴 사이에서 '행복한 고민'을 할 때를 생각해보자.

심각하지 않은 상황에서, 심각하지 않은 주제로 고민할 때,

실패하더라도 손해가 크지 않고, 온전히 내가 감당할 수 있을 때,

우리는 거리낌 없이 선택하고, 선택의 뒷맛도 찜찜하지 않다.

자유로운 기분을 맛보려면 선택의 상황 자체가 여유롭게 세팅되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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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하는 홈페이지에 올리기엔 적절하지 않은 부분 (22.04.07.)

'자유'로운 경험을 팔기 위해서는 소비자를 둘러싼 여러 '구속'을 발견해야 한다.

구속의 강도가 다르다면, 자유의 강도도 다르지 않을까? 상품의 종류에 따라 어떤 상품은 강한 자유에, 어떤 상품은 약한 자유에 호소하는 것이 적절할 수 있다.

 

강한 자유란 일상으로부터의 일탈, 전혀 생각지 못한 도전 등이다.

여행, 관광, 레저, 스포츠 등이 강한 자유 마케팅에 적합하다.

 

반면 약한 자유란 일상 속에서 누리는 자유이다. 소확행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일상을 벗어나지 않기에 쾌감은 적지만, 무엇보다도 '안전하다'.

몸을 격렬히 움직이거나 대중교통을 몇 시간 동안 기다리지 않고도 누릴 수 있다.

패션, 게임, 영화관 등이 약한 자유 마케팅에 적합하다.

 

예컨대 요즘은 지상파에서도 많이 나오는 모바일 게임 '삼국지' 광고를 떠올려보자.

중년 남성 연예인 세 명이 현실에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갑자기 게임 속 병사들을 거느리는 장수로 변신해 전략으로 다툰다. 이 광고에서 중년 남성들은 그들을 구속하는 일상에서 편리하고 안전하게 벗어나 게임 속 세상에서 장수가 된다. 그들은 비록 배우자가 친정에 갔을 때, 다 함께 낚시나 등산을 갈 때만큼 자유롭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일상 속에서 틈틈이, 짬을 내어 자유로워질 수 있다. 약한 자유 마케팅은 구속에서의 완전한 이탈보다는 일상의 망각이나 대안적 세계로의 전환이라는 주제로 구성된다.

 

'구독경제의 피로함'에 관한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반찬 배달 서비스를 한 달간 신청했는데, 열흘 지나니 그 집 반찬을 더 먹고 싶지 않다.

하지만 돈이 아까우니 중도 포기하기는 싫다.

 

이런 현상이 보편적이라면, 구독경제(또는, '매일 아침 문 앞에 배달된 반찬을 받아보는 경험'이 상품이라는 점에서 경험경제) 체제에서 소비자들은 시시때때로 변하는 자신의 자유의지를 거역하면서 사는 것이 아닌가? 내일의 나와 오늘의 내가 같은 욕구를 지니고 있을지 오늘의 내가 어떻게 안다고. 기업은 소비자를 자유롭게 하기는커녕 옭아매고 있는 것이 아닌가.

 

기업이 소비자를 자유롭게 하려면 다양한 옵션을 제공해야 하고, 되도록 세밀하게 커스터마이징된 상품을 제공해야 한다. 구독경제, 경험경제 체제에서 소비자는 잘 포장된 상품 하나하나가 아니라 어떤 네러티브 가운데서 맥락의 파편을 구매한다. 그런데 그 맥락이 시간에 따라 달라질 우려가 있다면, 기업은 그 점을 사전 고지하고 소비자가 경험할지 모르는 불편을 해소하려 힘써야 한다. 소비자A가 오늘 자유를 위해 구매한 그 상품이 내일은 그를 구속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A는 그 구속에서 해방되고자 당신의 경쟁사에서 또다른 자유를 구매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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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롭게 선택하길 바라는 사람은 많지만, 책임을 지고자 하는 사람은 적다.

끊임없는 선택과 책임의 연속인 오늘날, 자유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

우리는 언제 자유로운 기분을 느낄 수 있는가?


자유에서 중요한 것은 실천

자유의 사전적 정의는 '외부적인 구속이나 무엇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태'이다.

한자로는 스스로 자自에 말미암을 유由를 쓴다. 둘 다 상형문자이다.

自는 본래 얼굴의 중심인 코를 본뜬 자로서 '자기, 스스로'라는 뜻으로 확장되었다 하며, 由는 본래 등잔을 본뜬 자로서 지금은 '말미암다, 꾀하다' 등 다양한 의미라고 한다.

따라서 자유는 명사이지만 그 자체로 주어+동사의 의미를 포함한다. '자신'이 마음대로 무언가 '한다'라는 것이다.

즉, 마음만 먹어서는 안 되며 무언가 행동으로 옮겨야 자유라 할 수 있다.

한편, 자유를 뜻하는 영단어인 freedom은 형용사 free 뒤에 –dom을 붙여 명사화한 것으로 14세기경부터 '독단적, 전제적 통제로부터의 면제, 시민의 자유'라는 뜻으로 쓰였다.

형용사 free는 13세기경부터 '장애물이 없는'이라는 뜻으로 쓰이다가, 1580년대 들어 '무료로 제공됨'이라는 뜻으로도 쓰이기 시작했다.

워싱턴 한국전기념조형물에 새겨져 있는 'Freedom is not free(자유는 공짜가 아니다)'라는 말은 유명하다.


자유는 울타리를 허물고 매듭을 푸는 것

자유의 반대말로는 결박, 구속, 규제 등이 있다.

결박은 '움직이지 못하도록 묶는 것', 구속은 '행동이나 의사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 규제는 '규칙 등으로 일정한 한도를 넘지 못하게 막는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가로막고, 묶는 것’의 반대가 자유의 의미이다.

즉 그 울타리를 허물고 매듭을 푸는 것이 자유라는 말이다.

(울타리를 허물고 매듭을 푸는 게 자유라는 건가? 무슨 의미인지 확 와닿지는 않는데 더 풀어쓰거나 더 직접적으로 이야기를 해 줘야 하지 않을지...) 


자유는 행동하는 주체가 실천하는 것
이상에서 자유自由에 대해 두 가지 함의를 도출할 수 있다.
첫째, 애초에 행동의 주체(自)가 존재하지 않고서 자유는 아무 의미가 없다. 
즉 자유는 언제나 '누군가의 자유'여야만 한다.
그 누군가는 울타리를 허무는 상상을 하며 자유의지를 갖고, 실제로 허물며 자유로워진다.
둘째, 자유는 장애물을 허무는 것이니 동적이며 실천적인 개념이다.
자유를 향한 의지나 실천이 없다면 자유는 의미가 없다. 앞에 자유는 실천이 중요가 나왔기 때문에 두 번째는 끄덕여 지는데 누군가의 자유는 어디에서 나온 건지? 처음 나온 건지? 자유 뿐만 아니라 항상 주체의 문제는 있는 거 아닌지? 
잘 세뇌된 서커스 코끼리를 생각해보라. 울타리를 허물 힘이 있어도 실제로 허물지 않는다면 그것은 자유로운 상태가 아니다.  두 가지 함의를 왜 뽑았는지 앞과 뒤를 연결하는 건가?  위 단락들에서 각각 함의를 뽑는 건 어떨지? 

자유와 관련된 개념, 방종과 자율
자유와 관련된 개념으로 방종은 무엇이고, 자율은 무엇인가? 자유와는 다른 결이지만 비슷한 의미로 방종이나 자율도 있다. 방종은 무엇이고, 자율은 또 무엇인가? 
방종은 '아무 거리낌 없이 제멋대로 함부로 행동함'이며, 자율은 '스스로 자기의 방종을 억제함'이다.
방종은 언뜻 보면 자유와 비슷하지만, '함부로' 행동한다는 제약이 붙어있다. 자유로운 행위 중에서도 함부로, 즉 충분한 고민 없이 한 행위만이 방종이다.
그러면 무엇을 충분히 고민하고 행동해야 자유로우면서도 방종이 아닐 수 있는가?
그것은 바로 '자율'이라는 말이 드러내듯 '율(律)' 즉 사회적 규칙이다.
사회가 만들어낸 규칙은 개인에게는 때때로 울타리가 되기도 한다. 허나 그 울타리를 허물고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순간, 그 행위는 방종이 된다.
즉, '자유' 자체는 '누군가 울타리를 허무는 일'로서 긍정적이지도 부정적이지도 않은 개념이다.
하지만 울타리가 사회적 규칙인 경우 '방종'이라는 부정적인 개념으로 따로 분류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 어떻게 자유를 느낄까?  (2부 같은 느낌이어서 환기를 시키는 문장이 들어가는 게 어떨지?)

자유로워진 기분, 해방감
주관적, 감정적 측면에서 일반적으로 어떤 경우에 '자유로운 기분'이 들까?
일상의 굴레나 구속을 벗어났을 때 드는 '해방감'도 이러한 기분의 일종이다.
간만에 휴가를 얻어 여행을 떠났을 때, 지옥 같았던 고등학교를 졸업했을 때...
하지만 이런 큰 해방감을 누릴 수 있는 기회는 몇 년에 한 번 정도이다.

자유롭게 선택했다는 기분
어떤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서 '내가 자유롭게 선택했다는 기분'은 더 자주 느낄 수 있다.
오늘 저녁은 혼밥인데, 떡볶이를 먹을까, 피자를 먹을까? 두 메뉴 사이에서 '행복한 고민'을 할 때를 생각해보자.
이처럼 심각하지 않은 상황에서, 심각하지 않은 주제로 고민할 때,
실패하더라도 손해가 크지 않고, 온전히 내가 감당할 수 있을 때,
우리는 거리낌 없이 선택하고, 선택의 뒷맛도 찝찝하지 않다.
자유로운 기분을 맛보려면 내가 고를 만한 갈림길, 부술 만한 울타리라고 느낄 때 이다. 느껴야 한다.
즉 선택의 상황 자체가 여유롭게 세팅되어 있어야 한다. 선택 상황이 여유롭게 세팅되어 있는 상황에서 나의 의지로 선택할 때 사람들은 자유를 느낀다. 
'답정너' 식의 옵션만 주고 자유라고 포장한다면, 당사자는 더 큰 구속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느낄 수 도 있다. (조금 더 확신에 찬 어조였으면...) 

무한한 옵션과 자유
그러면 아예 무한한 옵션을 주면 더 자유롭다고 느낄까?
오늘 저녁 혼밥 메뉴를 정하고 있는데, 세계의 온갖 다채로운 요리의 목록이 적힌 요리책이 필요할까?
지나치게 옵션이 많이 제시되면 오히려 혼란스러울 뿐이다. 울타리를 부술 도구를 얻은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울타리를 마주한 것 같은 기분이다.
정리하면, 자유로운 기분을 주려면 옵션을 너무 적게 주어도, 너무 많이 주어도 안 된다.

그래서 잊지 말고 기억할 것은?
자유는 '행동의 주체가 울타리를 허무는 일'이며 실천적인 개념이다. '주체'나 '울타리'의 정의는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말이 너무 어렵다능...행동의 주체. 울타리를 허무는 일. )
문제해결 상황에서 자유로운 기분은 선택지의 수에 좌우된다. 간섭 없이 자유롭게 선택했다는 기분을 맛보려면 옵션이 너무 적어서도, 많아서도 안 된다.
모두에게 적절한 수준의 선택지를 제시하는 것은 어렵지만, 자신감, 실천 의지, 능력, 필요 등을 자세히 파악하여 선택지를 구성해야 한다.

자유는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태로 머릿속으로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천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 (맞나? 상상의 자유는 어떻게 된 걸까? )  
그 자유는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선에 한해서 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는 자유가 아니라 방종이다. 
자유의 기분은 다른 말로는 해방감이다. 
우리는 일상에서도 얼마든지 자유를 느낄 수가 있는데 문제 해결 상황에서 내가 선택을 할 수 있을 때 자유를 느낀다.  
선택지가 너무 적지도 많지도 않을 때 자유롭게 선택했다는 생각을 한다.   

자유 어렵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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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롭게 선택하길 바라는 사람은 많지만, 책임을 지고자 하는 사람은 적다.

끊임없는 선택과 책임의 연속인 오늘날, 자유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가?

우리는 언제 자유로운 기분을 느낄까?


자유에서 중요한 것은 실천

자유의 사전적 정의는 '외부적인 구속이나 무엇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태'이다.

한자로는 스스로 자自에 말미암을 유由를 쓴다. 둘 다 상형문자이다.

自는 본래 얼굴의 중심인 코를 본뜬 자로서 '자기, 스스로'라는 뜻으로 확장되었다 하며, 由는 본래 등잔을 본뜬 자로서 지금은 '말미암다, 꾀하다' 등 다양한 의미라고 한다.

따라서 자유는 명사이지만 그 자체로 주어+동사의 의미를 포함한다. '자신'이 마음대로 무언가 '한다'라는 것이다.

즉, 마음만 먹어서는 안 되며 무언가 행동으로 옮겨야 자유라 할 수 있다.

잘 세뇌된 서커스 코끼리를 생각해보라. 울타리를 허물 힘이 있어도 실제로 허물지 않는다면 그것은 자유가 아니다. 


자유는 제약에서 벗어나는 것

자유의 반대말로는 결박, 구속, 규제 등이 있다.

결박은 '움직이지 못하도록 묶는 것', 구속은 '행동이나 의사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 규제는 '규칙 등으로 일정한 한도를 넘지 못하게 막는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가로막고, 묶는 것’의 반대가 자유의 의미이다.

나를 가둔 울타리를 허물고, 나를 묶은 매듭을 푸는 것처럼, 내 행위를 제약하는 무언가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자유이다.


영어로 쓴 자유, freedom

한편, 자유를 뜻하는 영단어인 freedom은 형용사 free 뒤에 –dom을 붙여 명사화한 것으로 14세기경부터 '독단적, 전제적 통제로부터의 면제, 시민의 자유'라는 뜻으로 쓰였다.

형용사 free는 13세기경부터 '장애물이 없는'이라는 뜻으로 쓰이다가, 1580년대 들어 '무료로 제공됨'이라는 뜻으로도 쓰이기 시작했다.

워싱턴 한국전기념조형물에 새겨져 있는 'Freedom is not free(자유는 공짜가 아니다)'라는 말은 유명하다.


방종과 자율
자유와는 다른 결이지만 비슷한 개념으로 방종이나 자율도 있다.
방종은 무엇이고, 자율은 또 무엇인가? 
방종은 '아무 거리낌 없이 제멋대로 함부로 행동함'이며, 자율은 '스스로 자기의 방종을 억제함'이다.
방종은 언뜻 보면 자유와 비슷하지만, '함부로' 행동한다는 제약이 붙어있다.
방종은 자유의 일부이다. 자유로운 행위 중에서도 함부로, 즉 충분한 고민 없이 한 행위만이 방종이다.
그러면 무엇을 충분히 고민하고 행동해야 자유로우면서도 방종이 아닐 수 있는가?
그것은 바로 '자율'이라는 말이 드러내듯 '율(律)' 즉 사회적 규칙이다.
사회가 만들어낸 규칙은 개인에게는 때때로 제약이 되기도 한다. 허나 그 규칙을 허물고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순간, 그 행위는 방종이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 어떻게 자유를 느낄까? 

자유로워진 기분, 해방감
일상의 굴레나 구속을 벗어났을 때 드는 '해방감'은 자유로운 기분의 일종이다.
간만에 휴가를 얻어 여행을 떠났을 때, 지옥 같았던 학교를 졸업했을 때...
하지만 이런 큰 해방감을 누릴 수 있는 기회는 몇 년에 한 번 정도이다.

자유롭게 선택했다는 기분
어떤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내가 자유롭게 선택했다는 기분'을 더 자주 느낄 수 있다.
오늘 저녁은 혼밥인데, 떡볶이를 먹을까, 피자를 먹을까? 두 메뉴 사이에서 '행복한 고민'을 할 때를 생각해보자.
이처럼 심각하지 않은 상황에서, 심각하지 않은 주제로 고민할 때,
실패하더라도 손해가 크지 않고, 온전히 내가 감당할 수 있을 때,
우리는 거리낌 없이 선택하고, 선택의 뒷맛도 찝찝하지 않다.
자유로운 기분을 맛보는 때는 내가 고를 만한 갈림길, 부술 만한 울타리라고 느낄 때이다.
즉 선택 상황이 여유롭게 세팅되어 있는 상황에서 나의 의지로 선택할 때 사람들은 자유를 느낀다. 
'답정너' 식의 옵션만 주고 자유라고 포장한다면, 당사자는 더 큰 구속감을 느낄 수도 있다.

무한한 옵션과 자유
그러면 아예 무한한 옵션을 주면 더 자유롭다고 느낄까?
오늘 저녁 혼밥 메뉴를 정하고 있는데, 세계의 온갖 다채로운 요리의 목록이 적힌 요리책이 필요할까?
지나치게 옵션이 많이 제시되면 오히려 혼란스러울 뿐이다. 울타리를 부술 도구를 얻은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울타리를 마주한 것 같은 기분이다.
정리하면, 자유로운 기분을 주려면 옵션을 너무 적게 주어도, 너무 많이 주어도 안 된다.

그래서 잊지 말고 기억할 것은?
자유는 단순히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태'라기보다는 그것을 지향하는 실천, '구속을 벗어나는 실천'이다.
구속을 느끼고 불편하거나 귀찮아서 몸부림치는 것은 자유가 아니다. 최소한 벗어나려는 의지, 계획, 행동이 수반되어야 한다. 
대체로 자유는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선에 한해서 허용된다. 그렇지 않은 자유는 방종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일상에서도 얼마든지 자유를 느낀다. 바로 문제 해결 상황에서 내가 선택을 할 수 있을 때이다.
선택지가 너무 적지도 많지도 않을 때 자유롭게 선택했다고 생각한다.

#크리베이트 #개념어사전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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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g Youn PAK
Mar 15, 2022, 2:07:51 PM(edited: Mar 15, 2022, 2:22:14 PM)
수고 많으셨어요. free는 공짜라는 뜻도 있는데 그건 언제부터일까? 질문들도 흥미롭네요. 그런데, 자유를 보다 보니 자율, 일탈,  방종 이런 단어들이 생각나고, 왜 자유가 이토록 중요한지? 어떻게 자유를 인지할 수 있을지?  등등이 떠오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