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뼈대
국가번호 82번, 대한민국은 '빨리빨리'의 나라이다.
늘 무언가에 쫓기듯이 살고, 버스를 기다리는 5분조차 길게 느끼는 한국인이 '여유를 가져라'라는 웰빙의 가르침을 실천하기는 몹시 어렵다.
절충하는 척이라도 해야겠는지, 누군가는 '천천히 빨리 해'라며 재촉한다.
우리는 언제쯤 여유롭게 살 수 있는가? 그 전에, 여유란 무엇일까?
여유의 사전적 의미는 1)'물질적, 공간적, 시간적으로 넉넉하여 남음이 있는 상태'나 2)'느긋하고 차분하게 생각하거나 행동하는 마음의 상태, 또는 대범하고 너그럽게 일을 처리하는 마음의 상태'이다. (https://ko.dict.naver.com/#/entry/koko/14efd3e05a9b43d7899c691040e6ab53)
대체로 1번 의미의 여유, 즉 물질이든 시간이든 공간이든 남는다는 것을 알기에 2번 의미의 여유를 누리는 것일 테다. 여기서는 2번 의미 즉 여유로운 마음 상태에 주목해보자. 모든 것은 마음 먹기 달렸다는 말도 있잖은가. 돈이든 시간이든 공간이든 남아돌지 않는 경우가 많지만, 마음만은 여유롭게 먹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여유餘裕는 남을 여餘에 넉넉할 유裕를 쓴다. 餘는 본래 '밥(食)이 남다'라는 뜻을 지녔던 형성 문자로서 지금은 일반적인 '남다'의 뜻으로 쓰인다. 裕는 본래 옷(衣)이 널찍한 골짜기(谷)처럼 '헐렁하다'라는 뜻을 지녔던 회의 문자로 지금은 성격이나 인품, 재산이 '너그럽다'라는 뜻이다. 밥이 남고 헐렁한 옷을 입으니, 한자어부터 풍채가 좋은 부자의 이미지가 그려진다.
영어로 '여유로운 태도'(relaxed manner)나 '집중을 늦추다'(relax concentration)라고 할 때 relax를 쓴다. relax는 14세기경 주로 약이나 근육과 관련되어 '덜 촘촘하고 빽빽하게 하다'라는 뜻이었고, 15세기경 '긴장을 풀다'라는 뜻으로 쓰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https://www.etymonline.com/search?q=relax)
사전에서는 유의어로 융통성, 여분, 여백 등을 제시한다.
융통성은 그때그때의 사정과 형편을 보아 일을 처리하는 재주이다. 여유가 있다는 것은 융통성이 있다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보아 남는 자원이 있으면, 꼭 기준에 정확히 맞추지 않더라도 그때그때 적절히 조정해가며 자원을 배분할 수 있다. 또한 결정권자로서 마음이 여유로우면(상황을 긴박하다고 판단하지 않으면) 꼭 규칙을 정확히 준수하기보다는 구성원들의 긴장을 풀어줄 수도 있다.
여분은 어떤 한도에 차고 남은 부분이요, 여백은 종이에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고 남은 빈 자리이다. 빈 종이는 거기에 쓰인 글이나 그려진 그림 덕에 의미를 지니게 된다. 그런데 글이나 그림의 테두리 바깥에도 여전히 칠해지지 않은 부분은 남기 마련이다. 그러면 그 부분은 다 오려내 버려도 될까? 아니다. 나중에 그림을 더 그릴지도 모른다. 혹은 그냥 그렇게 남겨 두는 것이 오히려 그림을 돋보이게 할 수도 있다. 예술 작품에 관한 한 여백, 즉 종이에 두는 여유는 꼭 필요하다고 볼 수도 있겠다. 현실의 문제와는 달리 예술에서는 작품 자체가 기준이 되기 때문에.
여유의 반대말은 찾기 어려운데, '여유가 있다'라는 말의 반대말을 생각해보면 '쪼들리다' '긴장이 된다', '부족하다' 정도가 있겠다. 즉 어떤 기준을 충족시킬지 확신하지 못하거나, 충족시키지 못함이 뻔한 상태에서 우리는 여유를 잃는다. 그리고 그 최소 기준을 충족시키는 것이 지상 과제가 된다.
여유는 보통 어떤 기준을 전제한다. 그 기준을 충족시키고도 한참 남는 자원이 있을 때 우리는 여유롭다.
물론 객관적인 기준과는 관계없이 누군가는 습관적으로 또는 성격상 여유로울 수도 있다. 속으론 긴장했을지 몰라도 겉으로는 그것을 잘 숨기는 사람들이다.
목표의식이 강한 사람들은, 그 목표를 이루기 전까지는 결코 여유로울 수 없을까?
목표를 향해 달려가면서도 여유를 지닌다는 것, 일을 하면서도 여유를 지닌다는 것은 무엇일까?
결국 적절한 순간에 이완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인간이 아무리 열심히 일하더라도 매 순간 어떤 기준을 충족시키면서 살기는 어렵다. 우리는 '함량 미달'일 때가 훨씬 많다.
그럼에도 긴장을 풀 땐 풀어주어야 한다. 몇 시간이고 수축하고 긴장해 있는 근육은 제대로 기능할 수 없다.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때로 자신에게 너그러워져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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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쓰기
국가번호 82번, 대한민국은 '빨리빨리'의 나라이다.
한국인은 OECD 국가 중 최장 수준의 노동 시간에 시달린다. 여유 없이 살다 보니 번아웃에 취약하다.
한국인은 언제쯤 여유롭게 살 수 있을까? 그 전에, 여유란 무엇일까?
여유의 사전적 의미는 '물질적, 공간적, 시간적으로 넉넉하여 남음이 있는 상태'(물질적 여유)나
'느긋하고 차분하게 생각하거나 행동하는 마음의 상태, 또는 대범하고 너그럽게 일을 처리하는 마음의 상태'(심리적 여유)이다.
대체로 물질적 여유를 누리는 사람이 심리적 여유도 누릴 것이라 생각하기 마련이다.
여유餘裕는 남을 여餘에 넉넉할 유裕를 쓴다.
餘는 본래 '밥(食)이 남다'라는 뜻을 지녔던 형성 문자로서 지금은 일반적인 '남다'의 뜻으로 쓰인다.
裕는 본래 옷(衣)이 널찍한 골짜기(谷)처럼 '헐렁하다'라는 뜻을 지녔던 회의 문자로 지금은 성격이나 인품, 재산이 '너그럽다'라는 뜻이다.
밥이 남고 헐렁한 옷을 입으니, 한자어부터 풍채가 좋은 부자의 이미지가 그려진다.
영어로 '여유로운 태도'(relaxed manner)나 '집중을 늦추다'(relax concentration)라고 할 때 relax를 쓴다.
relax는 14세기경 주로 약이나 근육과 관련되어 '덜 촘촘하고 빽빽하게 하다'라는 뜻이었고, 15세기경 '긴장을 풀다'라는 뜻으로 쓰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사전에서는 유의어로 융통성, 여분, 여백 등을 제시한다.
융통성은 '그때 그때의 사정과 형편을 보아 일을 처리하는 재주'이다. 여유가 있으면 융통성이 생긴다.
경영인의 관점에서, 물질적 자원이 남으면, 꼭 기준에 정확히 맞추지 않더라도 그때그때 적절히 조절해가며 자원을 배분할 수 있다.
또는 마음이 여유로우면(상황을 긴박하다고 판단하지 않으면) 꼭 규칙을 정확히 준수하기보다는 구성원들의 긴장을 풀어줄 수도 있다.
여유의 반대말은 찾기 어려운데, '여유가 있다'라는 말의 반대말을 생각해보면 '쪼들리다' '긴장이 된다', '부족하다' 정도가 있다.
현실적 기준을 충족시킬지 확신할 수 없을 때, 우리는 심리적 여유까지 잃는다.
그리고 그 현실적 기준을 충족시키는 것만이 지상 과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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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에게는 심리적 여유가 없다.
개인에게 요구되는 기준, 들이대어지는 잣대, 즉 스펙이 너무나 많아서 그것들을 모두 충족시키느라 너무 바쁘기 때문이다.
심리적 여유가 없으면, 그 기준들 외에는 눈에 뵈는 것이 없어지니, 내 주위를 돌아볼 수 없게 된다.
하지만 삶의 목적이 행복이라고 할 때, 현실적 기준, 잣대, 또는 스펙은 모두 그 목표를 이루는 수단 중 극히 일부일 뿐이다.
그래서 기준을 충족시키고자 힘내면서도 행복이라는 목적을 늘 마음 한편에 두고 있어야 한다.
즉, 행복을 위해서는 심리적인 여유를 지녀야 한다.
심리적 여유를 지니지 못한 채 눈앞의 현실적 기준들만 충족시키고자 급급하면, 스펙은 높아질지 몰라도 행복감은 떨어질 수 있다.
어차피 완벽한 인간은 없다. 우리는 모두 '함량 미달'이다.
현실적 기준 충족 여부와는 별도로, 행복을 위한 심리적 여유는 누구나 일정 부분 가지고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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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번호 82번, 대한민국은 '빨리빨리'의 나라이다.
한국인은 OECD 국가 중 최장 수준의 노동 시간에 시달린다. 여유 없이 살다 보니 번아웃에 취약하다.
한국인은 언제쯤 여유롭게 살 수 있을까? 그 전에, 여유란 무엇일까?
여유는 물질적으로 남거나, 심리적으로 너그러운 상태
여유의 사전적 의미는 '물질적, 공간적, 시간적으로 넉넉하여 남음이 있는 상태'(물질적 여유)나
'느긋하고 차분하게 생각하거나 행동하는 마음의 상태, 또는 대범하고 너그럽게 일을 처리하는 마음의 상태'(심리적 여유)이다.
여유餘裕는 남을 여餘에 넉넉할 유裕를 쓴다.
餘는 본래 '밥(食)이 남다'라는 뜻을 지녔던 형성 문자로서 지금은 일반적인 '남다'의 뜻으로 쓰인다.
裕는 본래 옷(衣)이 널찍한 골짜기(谷)처럼 '헐렁하다'라는 뜻을 지녔던 회의 문자로 지금은 성격이나 인품, 재산이 '너그럽다'라는 뜻이다.
밥이 남고 헐렁한 옷을 입으니, 한자어부터 풍채가 좋은 부자의 이미지가 그려진다.
영어로 '여유로운 태도'(relaxed manner)나 '집중을 늦추다'(relax concentration)라고 할 때 relax를 쓴다.
relax는 14세기경 주로 약이나 근육과 관련되어 '덜 촘촘하고 빽빽하게 하다'라는 뜻이었고, 15세기경 '긴장을 풀다'라는 뜻으로 쓰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여유로우면 융통성이 생기는 법
사전에서는 유의어로 융통성, 여분, 여백 등을 제시한다.
융통성은 '그때 그때의 사정과 형편을 보아 일을 처리하는 재주'이다. 여유가 있으면 융통성이 생긴다.
경영자 경영인의 관점에서, 물질적 자원이 남으면, 꼭 기준에 정확히 맞추지 않더라도 그때그때 적절히 조절해가며 자원을 배분할 수 있다.
또는 마음이 여유로우면(상황을 긴박하다고 판단하지 않으면) 꼭 규칙을 정확히 준수하기보다는 구성원들의 긴장을 풀어줄 수도 있다.
여유가 없는 사람에게 융통성을 바라는 것은 지나친 일일지도 모른다. 반대로, 지나치게 고지식한 사람은 우선 심리적 여유부터 갖추는 편이 좋다.
여유는 기준 충족의 문제
'여유가 있다'라는 말의 반대말을 생각해보면 '쪼들리다' '긴장이 된다', '부족하다' 등이 있다.
현실적 기준을 충족시킬지 확신할 수 없을 때, 우리는 심리적 여유까지 잃는다. 그리고 그 현실적 기준을 충족시키는 것만이 지상 과제가 된다.
여유 없는 한국인
여유는 기준 충족의 문제이다. 이것이 한국인에게 심리적 여유가 없는 이유이다.
한국인은 개인에게 요구되는 기준, 들이대어지는 잣대, 즉 스펙이 너무나 많아서 그것들을 모두 충족시키느라 바쁘다.
심리적 여유가 없으면, 그 기준들 외에는 눈에 뵈는 것이 없어지니, 내 주위를 돌아볼 수 없게 된다.
행복을 위한 여유 (여유에 꼭 들어갈 꼭지인가?)
삶의 궁극적 목적은 행복이다. 현실적 기준, 잣대, 또는 스펙은 모두 행복을 이루는 수단 중 극히 일부일 뿐이다.
그래서 당면한 기준을 충족시키고자 힘내면서도 행복이라는 목적을 늘 마음 한편에 두고 있어야 한다.
즉, 행복을 위해서는 심리적인 여유를 지녀야 한다.
심리적 여유를 지니지 못한 채 눈앞의 현실적 기준들만 충족시키고자 급급하면, 스펙은 높아질지 몰라도 행복감은 떨어질 수 있다.
어차피 완벽한 인간은 없다. 우리는 모두 어떤 기준에서는 '함량 미달'이다.
현실적 기준 충족 여부와는 별도로, 행복을 위한 심리적 여유는 누구나 일정 부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잊지 말고 기억할 것은?
여유는 물질적으로는 남는 것이요, 심리적으로는 너그러운 것이다.
심리적 여유는 물질적 남음에 크게 좌우된다. 여유는 기준 충족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한국인에게 여유가 없는 이유는 요구되는 기준이 너무나 많아 맞추기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많은 기준들은 궁극적 목적인 행복을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마음 한편에 늘 두고 있어야 한다.
따라서 행복을 위해서는 스스로 완벽할 수 없다는 것을 인지하고, 물질과는 별도로 심리적 여유를 지녀야 한다.
여유는 물질적으로는 남는 것이요, 심리적으로는 너그러운 것이다.
심리적 여유는 물질적 남음에 좌우된다.
남는다는 것은 결국 어떤 기준으로 봤을 때 모자라거나 남는다는 의미이므로 여유에서 중요한 것은 기준을 충족했는가 여부이다.
한국인에게 여유가 없는 이유도 요구되는 기준이 너무나 많아 맞추기 어렵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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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번호 82번, 대한민국은 '빨리빨리'의 나라이다.
한국인은 OECD 국가 중 최장 수준의 노동 시간에 시달린다. 여유 없이 살다 보니 번아웃에 취약하다.
한국인은 언제쯤 여유롭게 살 수 있을까? 그 전에, 여유란 무엇일까?
여유는 물질적으로 남거나, 심리적으로 너그러운 상태
여유의 사전적 의미는 '물질적, 공간적, 시간적으로 넉넉하여 남음이 있는 상태'(물질적 여유)나
'느긋하고 차분하게 생각하거나 행동하는 마음의 상태, 또는 대범하고 너그럽게 일을 처리하는 마음의 상태'(심리적 여유)이다.
여유餘裕는 남을 여餘에 넉넉할 유裕를 쓴다.
餘는 본래 '밥(食)이 남다'라는 뜻을 지녔던 형성 문자로서 지금은 일반적인 '남다'의 뜻으로 쓰인다.
裕는 본래 옷(衣)이 널찍한 골짜기(谷)처럼 '헐렁하다'라는 뜻을 지녔던 회의 문자로 지금은 성격이나 인품, 재산이 '너그럽다'라는 뜻이다.
밥이 남고 헐렁한 옷을 입으니, 한자어부터 풍채가 좋은 부자의 이미지가 그려진다.
영어로 '여유로운 태도'(relaxed manner)나 '집중을 늦추다'(relax concentration)라고 할 때 relax를 쓴다.
relax는 14세기경 주로 약이나 근육과 관련되어 '덜 촘촘하고 빽빽하게 하다'라는 뜻이었고, 15세기경 '긴장을 풀다'라는 뜻으로 쓰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여유로우면 융통성이 생기는 법
사전에서는 유의어로 융통성, 여분, 여백 등을 제시한다.
융통성은 '그때 그때의 사정과 형편을 보아 일을 처리하는 재주'이다. 여유가 있으면 융통성이 생긴다.
경영자의 관점에서, 물질적 자원이 남으면, 꼭 기준에 정확히 맞추지 않더라도 그때그때 적절히 조절해가며 자원을 배분할 수 있다.
또는 마음이 여유로우면(상황을 긴박하다고 판단하지 않으면) 꼭 규칙을 정확히 준수하기보다는 구성원들의 긴장을 풀어줄 수도 있다.
여유가 없는 사람에게 융통성을 바라는 것은 지나친 일일지도 모른다. 반대로, 지나치게 고지식한 사람은 우선 심리적 여유부터 갖추는 편이 좋다.
여유는 기준 충족의 문제
'여유가 있다'라는 말의 반대말을 생각해보면 '쪼들리다' '긴장이 된다', '부족하다' 등이 있다.
현실적 기준을 충족시킬지 확신할 수 없을 때, 우리는 심리적 여유까지 잃는다. 그리고 그 현실적 기준을 충족시키는 것만이 지상 과제가 된다.
여유 없는 한국인
여유는 기준 충족의 문제이다. 이것이 한국인에게 심리적 여유가 없는 이유이다.
한국인은 개인에게 요구되는 기준, 들이대어지는 잣대, 즉 스펙이 너무나 많아서 그것들을 모두 충족시키느라 바쁘다.
심리적 여유가 없으면, 그 기준들 외에는 눈에 뵈는 것이 없어지니, 내 주위를 돌아볼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잊지 말고 기억할 것은?
여유는 물질적으로는 남는 것이요, 심리적으로는 너그러운 것이다. 심리적 너그러움은 물질적 남음에 크게 좌우된다.
모자라거나 남는다는 판단은 늘 어떤 기준을 전제하므로, 여유에서 중요한 것은 '기준을 충족했는가'이다.
한국인에게 여유가 없는 이유는 요구되는 기준이 너무나 많아 맞추기 어렵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