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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22-행복 (7월업로드)

posted Mar 22, 2022, 12:59 PM by hyoo@crevate.com   [ updated Jun 30, 2022, 12:04 PM by Sung Youn PAK]

[1] 뼈대

삶의 목적을 물었을 때 '행복'이라 답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럼 행복은 무엇인가요?'라고 재차 물으면 다양한 답이 나온다.
사랑, 화목, 돈, 건강... 어떤 이는 '행복이 무엇인지 알려고 살아간다'라며 능글맞게 넘기기도 한다.
누구나 행복해지고 싶어하지만 행복으로 가는 수단은 각자 다르다. 도대체 '삶의 목적' 그 자체라는 '행복'은 무엇일까? 행복의 의미를 안다면, 삶의 의미도 알 수 있을지 모른다.

행복의 사전적 정의는 '1)복된 좋은 운수' '2)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함. 또는 그러한 상태'이다.
(https://ko.dict.naver.com/#/entry/koko/e09fbb20489549e9ba9832d610b9a680)

1번 의미의 '행복'은 "나는 그녀의 행복을 빌었다"와 같이 '행운'과 같은 뜻이다. 이때 '운수'는 '이미 정해져 있어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천운과 기수'를 뜻하므로, 요즘 말로 풀어 쓰면 "나는 그녀가 하는 일이 다 잘 되기를 빌었다." 정도가 된다. 나든 그녀든, 인간의 힘으로는 그녀의 운수를 조작할 수 있을 리 만무하니 그저 신이나 초월적 존재에게 기도할 따름인 것이다. 행복의 운명론적 측면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좀 더 익숙한 의미는 2번이다. 흥미로운 것은 의미를 설명할 때 '만족'이라는 말이 반복해서 등장한다는 점이다.  '흐뭇하다'는 '마음에 흡족하여 매우 만족스럽다'라는 말이고, '기쁨'은 욕구가 충족되었을 때의 흐뭇하고 흡족한 마음이나 느낌'이다. 넉넉하다, 충분하다, 만족하다, 흡족하다 등등 동어반복적인 말들을 헤쳐나가다 보면, 행복은 한마디로 '살면서 느껴지는 반복적인 만족'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 같다. 여전히 모호하지만 적어도 두 가지 시사점은 있다. 첫째, 행복도 만족과 다름없이 어떤 기준이 있다. 단지 '좋은 기분'이라고 행복한 것은 아니며, 꼭 어떤 기준 이상이어야 한다. 둘째, 오직 한 순간이나 한 측면에서만 만족한다면 행복이 아니다. 예컨대 가정이 화목하지 않아 늘 불만족한 사람이 있는데 밥을 먹어서 식욕을 충족했다고 그 사람을 행복한 사람이라 말하지는 않는다.
물론 여전히 모호하다. 행복이라 부르고자 만족해야만 할 기준들이 너무나 많고 제각기 성격도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수많은 기준 가운데 사람마다, 상황마다 우선순위가 달라진다는 것을 고려하면, 우리는 누군가 '행복하다'라고 말했을 때 그의 성격, 신분, 상황 등을 고려해 그가 어떤 기준들을 충족한 상태가 되었는지를 대개 예측할 수는 있다. 배고프고 가난한 사람이 행복하다고 말했다면, 그는 방금 배불리 먹었거나 한동안 먹을 음식을 비축했을 것이다. 대통령이 공개석상에서 '행복하다'라고 말했다면 그는 국가의 큰 과제를 달성했거나 국민들의 지지를 한몸에 받았을 것이다. 이렇듯 행복을 이해하려면 그 인간의 삶을 파고들어야 한다. 행복이 삶의 절대적인 목적이기 때문이라서가 아니라, 행복의 여부가 삶의 기준을 드러내는 지표이기 때문이다.

happy의 어원이 되는 대다수의 유럽 단어들은 처음에 lucky, 즉 운이 좋음을 의미했다고 한다. '행운'을 뜻하는 hap에 -y를 붙여 형용사로 만든 것이다. 14세기 말엽에야 '매우 기쁜'의 의미로 쓰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참고로 hap은 '우연히 일어나다'라는 뜻의 동사로도 쓰였고 지금은 happen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https://www.etymonline.com/search?q=happy)
유럽에서 happy의 의미 변화는 마치 우리나라 사전의 '행복'의 1번 의미가 2번 의미로 변화해 간 것처럼 보인다. 인간의 기쁜 감정, 혹은 그것을 불러일으키는 상황의 원인을 초월적 존재에게 돌리는 운명론적인 어휘가 점차 그 상태 자체를 뜻하게 되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행복(幸福)은 다행할 행幸에 복 복福을 쓴다. 幸은 양손을 묶은 수갑과 벽에 고정하는 쇠사슬을 본뜬 문자라 한다. 지배계층의 관점에서는 죄를 지은 사람을 잡은 것이 천만다행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福은 제단(示)쪽으로 술잔(畐)에 든 술을 따르는 모습을 본뜬 문자로, 신에게 정성을 다해 제사를 지내는 것은 복을 기원하기 위함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죄인을 잡아(幸) 벌하고, 신에게 제사를 드려 복(福)을 비는 모습은 분명 옛 동아시아 고위층의 삶에 중요한 조건이었을 것이다.

행복과 비슷한 말로 사전에서는 '복'(삶에서 누리는 좋고 만족할 만한 행운. 또는 거기서 얻는 행복); '열락'(기뻐하며 즐거워함); '기쁨'(욕구가 충족되었을 때의 흐뭇하고 흡족한 마음이나 느낌)을 제시한다. 한편 행복의 반대말은 물론 불행이다.

개인의 관점에서 행복의 기준을 세우는 데에 가장 중요한 근거가 욕구이다. 매슬로우에 따르면 인간의 5대 욕구는 생리적 욕구, 안전 욕구, 소속과 애정의 욕구, 존경 욕구, 자아실현 욕구가 있으며, 순서대로 가장 기초적 욕구부터 차례대로 만족하려 한다고 한다. 하지만 개인은 하루에도 수백 가지씩 떠오르는 욕구들을 마주하며, 그들의 우선순위를 조금씩 조정한다고 보는 편이 현실에 더 맞을 것 같다. 또 욕구와는 상관없이 습관화, 일상화된 행위들이 있어서 이 행위를 하느라 욕구를 잠시 제쳐 두기도 한다. 이처럼 현대사회의 개인들은 보통 한두 가지의 욕구에 온전히 지배당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누군가 '나는 불행하다. 행복하고 싶다'라고 말할 때, 그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물론 앞서 말했듯 그의 성격, 신분, 상황을 고려해 그가 어떤 측면에서 불만족스러운지 추론하여 조언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배가 고프면 밥을 먹고, 졸리면 자면 된다. 하지만 행복의 기준 가운데 중요한 부분이 욕구이고, 인간은 하루에도 수백 번 욕구들의 우선순위를 조절하며 산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어쩌면 그가 불행을 느끼는 이유는 그의 욕구 컨트롤타워가 정상 작동하지 않기 때문은 아닌지 의심해볼 수 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될 수 있다. 삶에 활력을 불어넣는 욕구 자체, 또는 욕구의 대상을 찾지 못하겠거나, 혹은 욕구의 우선순위 조절에 자꾸만 실패하거나(다이어트 중인데 식욕을 참지 못하거나), 이런 경우 사람은 쉽게 불행해진다.

행복은 기준 충족의 문제이고, 특히 개인에게는 욕구 조절 및 달성의 문제이다. 시험에 떨어지기는 쉽지만 붙기는 어렵듯이, 불행해지기는 쉽고 행복해지기는 어렵다. 행복, 즉 '반복 가능한 만족'을 위해서는 정기적으로 자기 욕구 조절 장치를 점검해야 한다. 이 과정 자체가 지난하지만, 적어도 우리는 죄인을 구속하고 신에게 제사를 지내지 않고도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해야 하지 않나 생각해 본다.


[2] 글쓰기

삶의 목적을 물었을 때 '행복'이라 답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럼 행복은 무엇인가요?'라고 재차 물으면 다양한 답이 나온다. 사랑, 건강, 돈, 화목...
누구나 행복해지고 싶어하지만 행복으로 가는 수단은 각자 다른 것이다.
도대체 행복이란 무엇일까?

행복의 사전적 정의는 '1)복된 좋은 운수' '2)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함. 또는 그러한 상태'이다.

1번 의미의 '행복'은 "나는 그녀의 행복을 빌었다."라는 예문처럼 '행운'과 같은 뜻이다.
'행운'은 '좋은 운수'와 같고, '운수'는 '이미 정해져 있어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천운과 기수'를 뜻한다.
인간의 힘으로는 그녀의 운수를 조작할 수 없으니 초월적 존재에게 기도하는 것이다.
'행복의 운명론적 측면'이라고도 할 수 있다.

우리에게 좀 더 익숙한 의미는 2번이다.
흥미롭게도 행복의 의미를 설명할 때 '만족'이라는 말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흐뭇하다'는 '마음에 흡족하여 매우 만족스럽다'라는 말이고, '기쁨'은 욕구가 충족되었을 때의 흐뭇하고 흡족한 마음이나 느낌'이다.
사전의 페이지를 넘기며 '넉넉하다, 충분하다, 만족하다, 흡족하다' 등등 동어반복적인 말들을 헤쳐나가다 보면, 행복은 한마디로 '살면서 느껴지는 반복적인 만족'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 같다.

행복의 의미는 여전히 모호하지만 적어도 두 가지 시사점은 있다.
첫째, 행복도 만족과 다름없이 어떤 기준이 있다. 단지 '좋은 기분'이라고 행복한 것은 아니며, 꼭 어떤 기준 이상이어야 한다.
둘째, 오직 한 순간이나 한 측면에서만 만족한다면 행복이 아니다.
예컨대 가정이 화목하지 않아 늘 불만족한 사람이 있는데 밥을 먹어서 식욕을 충족했다고 그 사람을 행복한 사람이라 말하지는 않는다.

happy의 어원이 되는 대다수의 유럽 단어들은 처음에 lucky, 즉 운이 좋음을 의미했다고 한다.
'행운'을 뜻하는 hap에 -y를 붙여 형용사로 만든 것이다. 14세기 말엽에야 '매우 기쁜'의 의미로 쓰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참고로 hap은 '우연히 일어나다'라는 뜻의 동사로도 쓰였고 지금은 happen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유럽에서 happy의 의미 변화는 마치 우리나라 사전의 '행복'의 1번 의미가 2번 의미로 변화해 간 것처럼 보인다.
기쁜 감정이나 상황의 원인을 초월적 존재에게 돌리는 운명론적인 어휘가 점차 그 결과 자체를 뜻하게 되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행복(幸福)은 다행할 행幸에 복 복福을 쓴다.
幸은 양손을 묶은 수갑과 벽에 고정하는 쇠사슬을 본뜬 문자라 한다.
지배계층의 관점에서는 죄를 지은 사람을 잡은 것이 천만다행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福은 제단(示)쪽으로 술잔(畐)에 든 술을 따르는 모습을 본뜬 문자로, 신에게 정성을 다해 제사를 지내는 것은 복을 기원하기 위함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죄인을 잡아(幸) 벌하고, 신에게 제사를 드려 복(福)을 비는 모습은 분명 옛 동아시아 고위층의 삶에 중요한 조건이었을 것이다.

행복과 비슷한 말로 사전에서는 '복'(삶에서 누리는 좋고 만족할 만한 행운. 또는 거기서 얻는 행복), '열락'(기뻐하며 즐거워함), '기쁨'(욕구가 충족되었을 때의 흐뭇하고 흡족한 마음이나 느낌) 등을 제시한다,
행복의 반대말은 물론 불행이다.

개인의 관점에서 행복의 기준을 세우는 데에 가장 중요한 근거가 욕구이다.
매슬로우에 따르면 인간의 5대 욕구는 생리적 욕구, 안전 욕구, 소속과 애정의 욕구, 존경 욕구, 자아실현 욕구가 있으며, 순서대로 가장 기초적 욕구부터 차례대로 만족하려 한다고 한다.
하지만 개인은 하루에도 수백 가지씩 떠오르는 욕구들을 마주하며, 그들의 우선순위를 조금씩 조정한다고 보는 편이 현실에 더 맞을 것 같다.
또 욕구와는 상관없이 습관화, 일상화된 행위들이 있어서 이 행위를 하느라 욕구를 잠시 제쳐 두기도 한다.
이처럼 현대사회의 개인들은 보통 한두 가지의 욕구에 온전히 지배당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누군가 '나는 불행하다. 행복하고 싶다.'라고 말할 때, 그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행복의 기준 가운데 중요한 부분이 욕구이고, 인간은 하루에도 수백 번 욕구들의 우선순위를 조절하며 산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어쩌면 그가 불행을 느끼는 이유는 그의 욕구 컨트롤타워가 정상 작동하지 않기 때문은 아닌지 의심해볼 수 있다.
그의 욕구 컨트롤타워는 왜 고장 난 것일까?
욕구가 향할 적절한 대상을 찾지 못하거나, 혹은 욕구의 우선순위 조절에 자꾸 실패하여 자신감을 잃었을 수도 있다.

행복은 반복적인 만족이기에, 기준 충족의 문제이고, 특히 개인에게는 욕구 조절의 문제이다.
시험에 떨어지기는 쉽지만 붙기는 어렵듯이, 불행해지기는 쉽고 행복해지기는 어렵다.
결국 행복을 위해서는 정기적으로 자기 욕구 조절 장치를 점검해야 한다.


0629

삶의 목적을 물었을 때 '행복'이라 답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럼 행복은 무엇인가요?'라고 재차 물으면 다양한 답이 나온다. 사랑, 건강, 돈, 화목...

누구나 행복해지고 싶어하지만 행복으로 가는 수단은 각자 다른 것이다.

도대체 행복이란 무엇일까?

 

행복의 운명론적 측면

행복의 사전적 정의는 '1)복된 좋은 운수' '2)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함. 또는 그러한 상태'이다.

1번 의미의 '행복'은 "나는 그녀의 행복을 빌었다."라는 예문처럼 '행운'과 같은 뜻이다.

'행운'은 '좋은 운수'와 같고, '운수'는 '이미 정해져 있어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천운과 기수'를 뜻한다.

인간의 힘으로는 그녀의 운수를 조작할 수 없으니 초월적 존재에게 기도하는 것이다.

'행복의 운명론적 측면'이라고도 할 수 있다.

 

행복은 반복적인 만족

우리에게 좀 더 익숙한 의미는 2번이다. 사전에서 행복의 의미를 설명할 때는 '만족'이라는 말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흐뭇하다'는 '마음에 흡족하여 매우 만족스럽다'라는 말이고, '기쁨'은 욕구가 충족되었을 때의 흐뭇하고 흡족한 마음이나 느낌'이다.

사전의 페이지를 넘기며 '넉넉하다, 충분하다, 만족하다, 흡족하다' 등등 동어반복적인 말들을 헤쳐나가다 보니,

행복은 한마디로 '살면서 느껴지는 반복적인 만족'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 같다.

 

행복은 다양한 기준을 반복적으로 충족하는 것

여전히 행복의 의미는 모호하지만 적어도 두 가지 시사점은 있다.

첫째, 행복도 만족과 다름없이 어떤 기준이 있다. 단지 '좋은 기분'이라고 행복한 것은 아니며, 꼭 어떤 기준 이상이어야 한다. 

둘째, 오직 한 순간이나 한 측면에서만 만족한다면 행복이 아니다. 

예컨대 가정이 화목하지 않아 불행한 사람이 있는데 밥을 먹어서 식욕을 충족했다고 행복해졌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행복은 총체적인 판단의 문제이다. 

 

happy의 의미 확장

happy의 어원이 되는 대다수의 유럽 단어들은 처음에 lucky, 즉 운이 좋음을 의미했다고 한다.

'행운'을 뜻하는 hap에 -y를 붙여 형용사로 만든 것이다. 14세기 말엽에야 '매우 기쁜'의 의미로 쓰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참고로 hap은 '우연히 일어나다'라는 뜻의 동사로도 쓰였고 지금은 happen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유럽에서 happy의 의미 변화는 마치 우리나라 사전의 '행복'의 1번 의미가 2번 의미로 변화해 간 것처럼 보인다.

기쁜 감정이나 상황의 원인을 초월적 존재에게 돌리는 운명론적인 어휘가 점차 그 결과 자체를 뜻하게 된 것이다.

아마도 행복은 신이 만들어주는 것이 아닌 내가 개척해나가는 것이라는 사고가 발달하면서 어휘의 의미도 확장된 것이 아닌가 싶다.


한자로 '행복'은 옛 동아시아 고위층의 행복

한자로 행복(幸福)은 다행할 행幸에 복 복福을 쓴다.

幸은 양손을 묶은 수갑과 벽에 고정하는 쇠사슬을 본뜬 문자라 한다.  라 한다는 최소화시키면 어떨지? 뭔가 확신이 없는 사람 처럼 보여서...

지배계층의 관점에서는 죄를 지은 사람을 잡은 것이 천만다행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福은 제단(示)쪽으로 술잔(畐)에 든 술을 따르는 모습을 본뜬 문자로, 신에게 정성을 다해 제사를 지내는 것은 복을 기원하기 위함이라는 의미라고 한다.

죄인을 잡아(幸) 벌하고, 신에게 제사를 드려 복(福)을 비는 모습은 분명 옛 동아시아 고위층의 삶에 중요한 조건이었을 것이다.

한편, 행복과 비슷한 말로 사전에서는 '복'(삶에서 누리는 좋고 만족할 만한 행운. 또는 거기서 얻는 행복), '열락'(기뻐하며 즐거워함), '기쁨'(욕구가 충족되었을 때의 흐뭇하고 흡족한 마음이나 느낌) 등을 제시한다. 행복의 반대말은 물론 불행이다.

 

행복의 중요한 기준은 욕구

개인의 관점에서 행복의 기준을 세우는 데에 가장 중요한 근거가 욕구이다.

매슬로우에 따르면 인간의 5대 욕구는 생리적 욕구, 안전 욕구, 소속과 애정의 욕구, 존경 욕구, 자아실현 욕구가 있으며, 순서대로 가장 기초적 욕구부터 차례대로 만족하려 한다고 한다.

하지만 개인은 하루에도 수백 개 이상 떠오르는 욕구들을 마주하며, 그들의 우선순위를 조금씩 조정한다고 보는 편이 현실에 더 맞을 것 같다.

또 욕구와는 상관없이 습관화, 일상화된 행위들이 있어서 이 행위를 하느라 욕구를 잠시 제쳐 두기도 한다.

이처럼 현대사회의 개인들은 보통 한두 가지의 욕구에 온전히 지배 당하지 않는다.

 

불행은 컨트롤타워의 고장

그렇다면 누군가 '나는 불행하다. 행복하고 싶다.'라고 말할 때, 그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행복의 기준은 곧 욕구이고, 인간은 하루에도 수백 번 욕구들의 우선순위를 조절하며 산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어쩌면 그가 불행을 느끼는 이유는 그의 욕구 컨트롤타워(지휘체계)가 정상 작동하지 않기 때문은 아닌지 의심해볼 수 있다.

그의 욕구 컨트롤타워는 왜 고장 난 것일까?

다양한 원인이 있겠지만, 의욕이 없거나, 욕구가 향할 적절한 대상(목표)을 찾지 못하거나,

혹은 욕구의 우선순위 조절에 자꾸 실패하여(ex. 다이어트 중 폭식, 야식...) 자신감을 잃었을 수도 있다.


행복해지려면 점검하고 훈련해야

행복은 반복적인 만족이기에, 기준 충족의 문제이고, 특히 개인에게는 욕구 조절의 문제이다.

행복을 위해서는 정기적으로 자기 욕구 조절 장치를 점검해야 한다.

한때 행복을 위해 위로, 힐링을 강조한 책들이 많이 출간된 적이 있다.

하지만 해결책 없이 그저 쓰담쓰담해주기만 한다면 잠시 고통을 잊을 수는 있겠지만 행복해지기는 어렵다.

행복은 지속적인 만족이므로 행복해지려면 총체적인 솔루션이 필요하다.

지나친 기대 버리기, 증오 버리기 연습과 같이 여러 종교들에서 강조하는 방법들은 결국 욕구 조절 장치를 점검하고, 훈련하는 과정이다.

꼭 초월적 존재에게서 그 근거를 찾지 않더라도 내 운명 개척의 관점에서 취사선택하여 시도해볼 수도 있다.


그래서 잊지 말고 기억할 것은?

행복은 지극히 추상적인 개념처럼 보이지만 결국 만족의 확장판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다양한 기준을 반복적으로 충족하는 것'이다. 앞에서 나온 두 가지 시사점도 추가하는 게 좋지 않을지? 

개인의 관점에서 행복은 기준 충족의 문제이고, 기준의 가장 중요한 근거는 욕구이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욕구의 우선순위를 조절하며 살아간다. 따라서 행복한 삶을 살려면 때때로 욕구 조절 장치를 점검하고 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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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목적을 물었을 때 '행복'이라 답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럼 행복은 무엇인가요?'라고 재차 물으면 다양한 답이 나온다. 사랑, 건강, 돈, 화목...

누구나 행복해지고 싶어하지만 행복으로 가는 수단은 각자 다른 것이다.

도대체 행복이란 무엇일까?

 

행복의 운명론적 측면

행복의 사전적 정의는 '1)복된 좋은 운수' '2)생활에서 충분한 만족과 기쁨을 느끼어 흐뭇함. 또는 그러한 상태'이다.

1번 의미의 '행복'은 "나는 그녀의 행복을 빌었다."라는 예문처럼 '행운'과 같은 뜻이다.

'행운'은 '좋은 운수'와 같고, '운수'는 '이미 정해져 있어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천운과 기수'를 뜻한다.

인간의 힘으로는 그녀의 운수를 조작할 수 없으니 초월적 존재에게 기도하는 것이다.

'행복의 운명론적 측면'이라고도 할 수 있다.

 

행복은 반복적인 만족

우리에게 좀 더 익숙한 의미는 2번이다. 사전에서 행복의 의미를 설명할 때는 '만족'이라는 말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흐뭇하다'는 '마음에 흡족하여 매우 만족스럽다'라는 말이고, '기쁨'은 욕구가 충족되었을 때의 흐뭇하고 흡족한 마음이나 느낌'이다.

사전의 페이지를 넘기며 '넉넉하다, 충분하다, 만족하다, 흡족하다' 등등 동어반복적인 말들을 헤쳐나가다 보니,

행복은 한마디로 '살면서 느껴지는 반복적인 만족'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 같다.

 

행복은 다양한 기준을 반복적으로 충족하는 것

여전히 행복의 의미는 모호하지만 적어도 두 가지 시사점은 있다.

첫째, 행복도 만족과 다름없이 어떤 기준이 있다.

단지 '좋은 기분'이라고 행복한 것은 아니며, 꼭 어떤 기준 이상이어야 한다. 

둘째, 행복은 단편적 문제가 아니라 복합적, 총체적인 문제이다. 

예컨대 가정이 화목하지 않아 불행한 사람이 있는데 밥을 먹어서 식욕을 충족했다고 행복해졌다고  말하지는 않는다.  


happy의 의미 확장

happy의 어원이 되는 대다수의 유럽 단어들은 처음에 lucky, 즉 운이 좋음을 의미했다고 한다.

'행운'을 뜻하는 hap에 -y를 붙여 형용사로 만든 것이다. 14세기 말엽에야 '매우 기쁜'의 의미로 쓰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참고로 hap은 '우연히 일어나다'라는 뜻의 동사로도 쓰였고 지금은 happen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유럽에서 happy의 의미 변화는 마치 우리나라 사전의 '행복'의 1번 의미가 2번 의미로 변화해 간 것처럼 보인다.

기쁜 감정이나 상황의 원인을 초월적 존재에게 돌리는 운명론적인 어휘가 점차 그 결과 자체를 뜻하게 된 것이다.

아마도 행복은 신이 만들어주는 것이 아닌 내가 개척해나가는 것이라는 사고가 발달하면서 어휘의 의미도 확장된 것이 아닌가 싶다.


한자로 '행복'은 옛 동아시아 고위층의 행복

한자로 행복(幸福)은 다행할 행幸에 복 복福을 쓴다.

幸은 양손을 묶은 수갑과 벽에 고정하는 쇠사슬을 본뜬 문자이다.

지배계층의 관점에서는 죄를 지은 사람을 잡은 것이 천만다행이라는 의미이다.

福은 제단(示)쪽으로 술잔(畐)에 든 술을 따르는 모습을 본뜬 문자로, 신에게 정성을 다해 제사를 지내는 것은 복을 기원하기 위함이라는 의미이다.

죄인을 잡아(幸) 벌하고, 신에게 제사를 드려 복(福)을 비는 모습은 분명 옛 동아시아 고위층의 삶에 중요한 조건이었을 것이다.

한편, 행복과 비슷한 말로 사전에서는 '복'(삶에서 누리는 좋고 만족할 만한 행운. 또는 거기서 얻는 행복), '열락'(기뻐하며 즐거워함), '기쁨'(욕구가 충족되었을 때의 흐뭇하고 흡족한 마음이나 느낌) 등을 제시한다. 행복의 반대말은 물론 불행이다.

 

행복의 중요한 기준은 욕구

개인의 관점에서 행복의 기준을 세우는 데에 가장 중요한 근거가 욕구이다.

매슬로우에 따르면 인간의 5대 욕구는 생리적 욕구, 안전 욕구, 소속과 애정의 욕구, 존경 욕구, 자아실현 욕구가 있으며, 순서대로 가장 기초적 욕구부터 차례대로 만족하려 한다고 한다.

하지만 개인은 하루에도 수백 개 이상 떠오르는 욕구들을 마주하며, 그들의 우선순위를 조금씩 조정한다고 보는 편이 현실에 더 맞다.

또 욕구와는 상관없이 습관화, 일상화된 행위들이 있어서 이 행위를 하느라 욕구를 잠시 제쳐 두기도 한다.

이처럼 현대사회의 개인들은 보통 한두 가지의 욕구에 온전히 지배 당하지 않는다.

 

불행은 컨트롤타워의 고장

그렇다면 누군가 '나는 불행하다. 행복하고 싶다.'라고 말할 때, 그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행복의 기준은 곧 욕구이고, 인간은 하루에도 수백 번 욕구들의 우선순위를 조절하며 산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그가 불행을 느끼는 이유는 혹시 그의 욕구 컨트롤타워(지휘체계)가 정상 작동하지 않기 때문은 아닌지 의심해볼 수 있다.

그의 욕구 컨트롤타워는 왜 고장 난 것일까?

다양한 원인이 있겠지만, 의욕이 없거나, 욕구가 향할 적절한 대상(목표)을 찾지 못하거나,

혹은 욕구의 우선순위 조절에 자꾸 실패하여(ex. 다이어트 중 폭식, 야식...) 자신감을 잃었을 수도 있다.


행복해지려면 점검하고 훈련해야

행복은 반복적인 만족이기에, 기준 충족의 문제이고, 특히 개인에게는 욕구 조절의 문제이다.

행복을 위해서는 정기적으로 자기 욕구 조절 장치를 점검해야 한다.

한때 행복을 위해 위로, 힐링을 강조한 책들이 많이 출간된 적이 있다.

하지만 해결책 없이 그저 쓰담쓰담해주기만 한다면 잠시 고통을 잊을 수는 있겠지만 행복해지기는 어렵다.

행복은 지속적인 만족이므로 행복해지려면 총체적인 솔루션이 필요하다.

지나친 기대 버리기, 증오 버리기 연습과 같이 여러 종교들에서 강조하는 방법들은 결국 욕구 조절 장치를 점검하고, 훈련하는 과정이다.

꼭 초월적 존재에게서 그 근거를 찾지 않더라도 내 운명 개척의 관점에서 취사선택하여 시도해볼 수도 있다.


그래서 잊지 말고 기억할 것은?

행복은 지극히 추상적인 개념처럼 보이지만 결국 만족의 확장판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따라서 행복도 만족과 다름없이 어떤 기준이 있다. 대신에 행복은 단편적 문제가 아니라 복합적, 총체적인 문제이다. 즉 행복은 '다양한 기준의 반복적 만족'이다.

개인의 관점에서 행복은 기준 충족의 문제이고, 기준의 가장 중요한 근거는 욕구이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욕구의 우선순위를 조절하며 살아간다. 따라서 행복한 삶을 살려면 때때로 욕구 조절 장치를 점검하고 훈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