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원칙들과 마주한다.
누군가는 '원칙은 지키라고 있는 것이다'라고, 다른 누군가는 '원칙은 깨라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면 어떤 원칙은 지켜야 하고, 어떤 것은 깨도 되는 것일까? 원칙이란 무엇이길래 우리를 구속하는 것일까?
원칙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행동이나 이론 따위에서 일관되게 지켜야 하는 기본적인 규칙이나 법칙'이다.
(https://ko.dict.naver.com/#/entry/koko/18ac387827734c2099bdc7add4eb969a)
또 철학에서 원칙이란 '다른 여러 명제가 도출되는 기본 논제'라 한다. 그런데 이 정의를 파고들면 철학이나 수학의 어려운 문제들에 직면하므로, 여기서는 일상적 의미의 원칙에 대해서만 살펴보자. '너는 너무 원칙만 고수해', '원칙적으로는 그렇습니다'라는 문장에서 쓰이는 바로 그 원칙이다.
원칙은 일관되게 지켜야 하는 기본적인 규칙이나 법칙이라 했다. 일관됨은 한결같음, 즉 변함없음을 말하고, '원칙'의 유의어이기도 한 '규칙'이나 '법칙'은 각각 '여러 사람이 다 같이 지키기로 작정한 법칙',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규범'을 말한다. 몹시 동어반복적인데, '규범'이란 '인간이 행동하거나 판단할 때에 마땅히 따르고 지켜야 할 가치 판단의 기준'이다. 돌고 돌아 '기준'으로 귀결됐다. 결국 원칙은 반드시 지켜야 할 기준인 셈이다.
누군가 어떤 가상의 선을 그어두고, 이를 넘어서면 안 되고 반드시 이쪽에 있어야만 한다고 정해두었다. 그냥 기준도 아니고 반드시 지켜야 할 기준이니 몹시 중요한 기준인 모양이다.
원칙의 사전적 정의만을 보면 예외는 허용되지 않는 엄격한 기준이라고 생각된다. 그럼에도 우리는 '원칙이 있으면 늘 예외도 있다'라고 생각한다. 이는 아무래도 원칙이 현실에 적용될 때, 불가피하게 현실에 잘 들어맞지 않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일 것이다. 즉 현실은 너무나 복잡다단하고 변화무쌍해서, 원칙이 아무리 엄격한 기준(진하게 그어둔 선)이라 할지라도 현실의 모든 측면을 제어할 수 없다. 이때 예외가 발생한다. 즉 원칙 자체가 예외를 창출하지는 않지만, 원칙이 현실에 적용되는 순간 예외가 산출되기 시작한다고 볼 수 있다. 예외가 쌓이기 시작하면, 그것이 또 다른 원칙이 될 수도 있다.
한자로 원칙(原則)은 근원 원(原)에 법칙 칙(則)을 쓴다.
原은 기슭 엄(厂)에 샘 천(泉)이 결합한 자로, 돌 틈새에서 물이 솟아 나오는 모습(泉)이 있는 기슭이니 '물길이 시작되는 곳'이므로 '사물의 시초'라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한다. 則은 본래 조개(貝)가 아니라 솥 정(鼎)을 쓰던 자인데, 제사를 지낼 때 쓰던 솥은 신성함을 상징했다. 이렇게 신성한 솥에 칼(刀)로 문자를 새겨 넣으니, 그 문자는 신과의 소통을 위한 글귀, 즉 '법칙'을 의미했다 한다.
'원칙'에 해당하는 영단어로 우리말 사전에서는 '원리' principle, '규칙' rule이 소개된다. principle은 principal과 어원이 같고 14세기경부터 '근원, 시작' 또는 '통치행위'의 의미로 쓰였다 한다. rule은 1200년경 '근원적 통치행위 또는 반드시 따라야 할 공식'이라는 뜻으로 쓰였다 한다.
(https://www.etymonline.com/search?q=principle)
잘 지켜지는 원칙과 그렇지 않은 원칙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적용되는 범위가 극히 한정적인 (현실의 작은 부분만을 제어하는) 원칙의 경우 통제력이 높아 예외가 발생할 가능성이 적다. 반면 넓은 범위를 제어하는 규칙일수록 통제력이 낮다. 사회 곳곳에서 도덕적 원칙들이 잘 지켜지지 않는 이유가 그 때문이다. 우리나라 고유의 도덕적 원칙은 孝이지만, 사람마다 효를 실천하는 정도는 다르다. 한편, 원칙의 구체성을 탓할 수도 있다. 부모님께 얼마나 해드려야 효인지 명확하지 않으니 통제력이 낫다는 것이다. 또는 원칙의 관리자들이 부재하거나 나태함을 탓할 수도 있다. 국가든 학교든 가정이든 효를 실천하라고 강조하는 사람이나 효행을 감독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현실에서 원칙의 통제력은 대부분 '원칙의 관리자들'의 행실에 좌우된다. 관리자들이 원칙을 잘 알고 있으며 감독을 부지런히 하는 경우, 원칙은 대체로 잘 지켜진다. 원칙을 지켜야 할 이들에게 원칙 자체는 보이지 않는다. 마주치는 것은 권위를 지닌 감시자들뿐이다. 그러므로 원칙을 둘러싸고 지배와 복종 관계 성립은 불가피한데, 원칙의 관리자들이 곧 원칙을 지켜야 할 이들인 경우가 가장 이상적이다. 즉 감시자들이 스스로 원칙을 잘 지키며, 원칙을 지켜야 할 이들이 원칙을 직접 관리할 수 있는 상태, '자율'이 이루어지는 상태이다.
원칙은 언제 수정될 수 있을까? 혹은, 어떤 경우에 기존의 원칙을 수정해야 하며 어떤 경우에 새로운 원칙을 추가하거나 구체화해야 할까?
현실과 맞지 않을 때? 관리자들이 원할 때? 아니면 원칙을 지켜야 할 이들이 원할 때?
이때야말로 일반적인 원칙을 찾기 힘들다. 왜냐하면 이것이 '원칙의 원칙'이기 때문이다. 원칙과 예외의 관계를 조율하고, 원칙의 통제성을 평가하고, 원칙을 만들고 바꾸고 지우는 일련의 과정조차 어떤 원칙을 따르기 마련이다. 즉 우리는 원칙을 따르면서 '원칙의 원칙'을 상상할 수밖에 없다.
'원칙의 원칙'은 원칙뿐 아니라 예외도 규율하므로, 우리는 종종 불합리한 원칙 자체보다도 '원칙의 원칙'에 불만을 지닌다.
원칙의 원칙 중 대표적인 것이 직장 문화이다. 직장에 암묵적인 원칙으로 '식사 자리에서는 막내가 수저를 깐다'가 있다고 해보자. 막내는 이 원칙에 불만을 지닐 수 있다. 여기에서, 직장 문화에 따라 막내의 운명이 결정된다. 만약 자유로운 분위기의 직장이라면 막내는 이 원칙이 불합리하다고 상사에게 보고해서 고칠 것이다. 그렇지 못한 직장이라면 막내는 후배가 들어올 때까지 꾹 참고 수저를 깔아야 할 것이다. 결국 원칙은 수정되지 않는다. 이때 '서열과 관련된 암묵적인 원칙에 관해 불만을 제기하지 않는다'라는 '원칙의 원칙'은 그 통제력을 과시한다.
[2] 글쓰기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원칙들과 마주한다.
누군가는 '원칙은 지키라고 있는 것이다'라고, 다른 누군가는 '원칙은 깨라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면 어떤 원칙은 지켜야 하고, 어떤 것은 예외가 허용될까? 원칙이란 무엇이길래 우리를 구속하는 것일까?
원칙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행동이나 이론 따위에서 일관되게 지켜야 하는 기본적인 규칙이나 법칙'이다.
또 철학에서 원칙이란 '다른 여러 명제가 도출되는 기본 논제'라 한다.
그런데 이 정의를 파고들면 철학이나 수학의 어려운 문제들에 직면하므로, 여기서는 일상적 의미의 원칙에 대해서만 살펴보자.
'너는 너무 원칙만 고수해', '원칙적으로는 그렇습니다'라는 문장에서 쓰이는 바로 그 원칙 말이다.
원칙은 일관되게 지켜야 하는 기본적인 규칙이나 법칙이다.
일관됨은 한결같음, 즉 변함없음을 말하고, '원칙'의 유의어이기도 한 '규칙'이나 '법칙'은 각각 '여러 사람이 다 같이 지키기로 작정한 법칙',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규범'을 말한다.
몹시 동어반복적인데, '규범'이란 '인간이 행동하거나 판단할 때에 마땅히 따르고 지켜야 할 가치 판단의 기준'이다.
돌고 돌아 '기준'으로 귀결됐다. 결국 원칙은 반드시 지켜야 할 기준인 셈이다.
누군가 어떤 가상의 선을 그어두고, 이를 넘어 저쪽으로 가면 안 되고 반드시 이쪽에 있어야만 한다고 정해둔 것이다.
원칙의 사전적 정의만을 보면 예외는 허용되지 않는 엄격한 기준이라고 생각된다.
그럼에도 우리는 '원칙이 있으면 늘 예외도 있다'라고 생각한다.
원칙이 현실에 적용될 때, 불가피하게 현실에 잘 들어맞지 않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다.
즉 현실은 너무나 복잡다단하고 변화무쌍해서, 원칙이 아무리 엄격한 기준(진하게 그어둔 선)이라 할지라도 현실의 모든 측면을 제어할 수 없다. 이때 예외가 발생한다.
즉 원칙이 현실에 적용되는 순간 예외가 산출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예외가 쌓이기 시작하면, 그것이 또 다른 원칙이 될 수도 있다.
한자로 원칙(原則)은 근원 원(原)에 법칙 칙(則)을 쓴다.
原은 기슭 엄(厂)에 샘 천(泉)이 결합한 자로, 돌 틈새에서 물이 솟아 나오는 모습(泉)이 있는 기슭이니 '물길이 시작되는 곳'이므로 '사물의 시초'라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한다.
則은 본래 조개(貝)가 아니라 솥 정(鼎)을 쓰던 자인데, 제사를 지낼 때 쓰던 솥은 신성함을 상징했다.
이렇게 신성한 솥에 칼(刀)로 문자를 새겨 넣으니, 그 문자는 신과의 소통을 위한 글귀, 즉 '법칙'을 의미했다 한다.
'원칙'에 해당하는 영단어로 우리말 사전에서는 '원리' principle, '규칙' rule이 소개된다.
principle은 principal과 어원이 같고 14세기경부터 '근원, 시작' 또는 '통치행위'의 의미로 쓰였다 한다.
rule은 1200년경 '근원적 통치행위 또는 반드시 따라야 할 공식'이라는 뜻으로 쓰였다 한다.
잘 지켜지는 원칙과 그렇지 않은 원칙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적용 범위가 극히 한정적인 (현실의 작은 부분만을 제어하는) 원칙의 경우 예외가 적으니 통제력은 높다.
반면 넓은 범위를 제어하는 규칙일수록 통제력이 낮다. 사회 곳곳에서 도덕적 원칙들이 잘 지켜지지 않는 이유가 이것이다.
우리나라 고유의 도덕적 원칙은 孝이지만, 사람마다 효를 실천하는 정도는 다르다.
한편, 원칙의 구체성을 탓할 수도 있다.
부모님께 얼마나 해드려야 효인지 명확하지 않으니 통제력이 낫다는 것이다.
또는 원칙의 관리자들이 부재하거나 나태함을 탓할 수도 있다.
국가든 학교든 가정이든 효를 실천하라고 강조하는 사람이나 효행을 감독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원칙을 지켜야 할 이들에게 원칙 자체는 보이지 않는다. 마주치는 것은 권위를 지닌 감시자들뿐이다.
그래서 원칙을 둘러싸고 권력 관계가 형성되곤 한다.
따라서 원칙에 도전하는 사람들은 권력에 도전하는 것으로 보이며, 불순분자로 낙인 찍히기 쉽다.
그럼에도 조직의 혁신을 위해 원칙은 때때로 수정되어야 한다.
낡은 원칙을 지키려다 위기를 관리하지 못해 조직이 무너지고 만다면, 그보다 주객전도된 상황은 없을 것이다.
혁신을 위해서는 누구나 원칙에 도전할 수 있어야 한다. 누구나 불순분자를 자처하고 권력에 대들 수 있어야 한다.
만일 조직 내에서 도전자, 혁신가를 찾기 어렵다면, 조직 밖에서라도 이식해야 한다.
법전을 난생 처음 펼쳐 본 사람이야말로 법의 불합리성을 읽어내고 지적할 수 있다.
'안 본 눈 삽니다'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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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원칙들과 마주한다.
누군가는 '원칙은 지키라고 있는 것이다'라고, 다른 누군가는 '원칙은 깨라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면 어떤 원칙은 지켜야 하고, 어떤 것은 예외가 허용될까? 원칙이란 무엇이길래 우리를 구속하는 것일까?
원칙은 꼭 지켜야 할 기준
원칙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행동이나 이론 따위에서 일관되게 지켜야 하는 기본적인 규칙이나 법칙'이다.
또 철학에서 원칙이란 '다른 여러 명제가 도출되는 기본 논제'라 한다.
그런데 이 정의를 파고들면 철학이나 수학의 어려운 문제들에 직면하므로, 여기서는 일상적 의미의 원칙에 대해서만 살펴보자.
'너는 너무 원칙만 고수해', '원칙적으로는 그렇습니다'라는 문장에서 쓰이는 바로 그 원칙 말이다.
원칙은 일관되게 지켜야 하는 기본적인 규칙이나 법칙이다.
일관됨은 한결같음, 즉 변함없음을 말하고, '원칙'의 유의어이기도 한 '규칙'이나 '법칙'은 각각 '여러 사람이 다 같이 지키기로 작정한 법칙',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규범'을 말한다.
몹시 동어반복적인데, '규범'이란 '인간이 행동하거나 판단할 때에 마땅히 따르고 지켜야 할 가치 판단의 기준'이다.
돌고 돌아 '기준'으로 귀결됐다. 결국 원칙은 반드시 지켜야 할 기준인 셈이다.
누군가 어떤 가상의 선을 그어두고, 이를 넘어 저쪽으로 가면 안 되고 반드시 이쪽에 있어야만 한다고 정해둔 것이다.
예외가 생기는 원인
원칙의 사전적 정의만을 보면 예외는 허용되지 않는 엄격한 기준이라고 생각된다.
그럼에도 우리는 '원칙이 있으면 늘 예외도 있다'라고 생각한다.
원칙이 현실에 적용될 때, 불가피하게 현실에 잘 들어맞지 않는 경우가 생기기 때문이다.
즉 현실은 너무나 복잡다단하고 변화무쌍해서, 원칙이 아무리 엄격한 기준이라 할지라도 현실의 모든 측면을 제어할 수 없다. 이때 예외가 발생한다.
즉 원칙이 현실에 적용되는 순간 예외가 산출되기 시작하는 것이다. 예외가 쌓이기 시작하면, 그것이 또 다른 원칙이 될 수도 있다.
한자와 영어에서의 '원칙'
한자로 원칙(原則)은 근원 원(原)에 법칙 칙(則)을 쓴다.
原은 기슭 엄(厂)에 샘 천(泉)이 결합한 자로, 돌 틈새에서 물이 솟아 나오는 모습(泉)이 있는 기슭이니 '물길이 시작되는 곳'이므로 '사물의 시초'라는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 한다.
則은 본래 조개(貝)가 아니라 솥 정(鼎)을 쓰던 자인데, 제사를 지낼 때 쓰던 솥은 신성함을 상징했다.
이렇게 신성한 솥에 칼(刀)로 문자를 새겨 넣으니, 그 문자는 신과의 소통을 위한 글귀, 즉 '법칙'을 의미했다 한다.
한편 '원칙'에 해당하는 영단어로 우리말 사전에서는 '원리' principle, '규칙' rule이 소개된다.
principle은 principal과 어원이 같고 14세기경부터 '근원, 시작' 또는 '통치행위'의 의미로 쓰였다 한다.
rule은 1200년경 '근원적 통치행위 또는 반드시 따라야 할 공식'이라는 뜻으로 쓰였다 한다.
원칙의 통제력
잘 지켜지는 원칙과 그렇지 않은 원칙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적용 범위가 극히 한정적인 (현실의 작은 부분만을 제어하는) 원칙의 경우 예외가 적으니 통제력은 높다.
반면 넓은 범위를 제어하는 규칙일수록 통제력이 낮다. 사회 곳곳에서 도덕적 원칙들이 잘 지켜지지 않는 이유가 이것이다.
우리나라 고유의 도덕적 원칙은 孝이지만, 사람마다 효를 실천하는 정도는 다르다.
한편, 원칙의 구체성을 탓할 수도 있다.
부모님께 얼마나 해드려야 효인지 명확하지 않으니 통제력이 낫다는 것이다.
또는 원칙의 관리자들이 부재하거나 나태함을 탓할 수도 있다.
국가든 학교든 가정이든 효를 실천하라고 강조하는 사람이나 효행을 감독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원칙과 권력
원칙을 지켜야 할 이들에게 원칙 자체는 보이지 않는다. 마주치는 것은 권위를 지닌 감시자들뿐이다.
그래서 원칙을 둘러싸고 권력 관계가 형성되곤 한다.
따라서 원칙에 도전하는 사람들은 권력에 도전하는 것으로 보이며, 불순분자로 낙인 찍히기 쉽다.
혁신과 원칙
그럼에도 조직의 혁신을 위해 원칙은 때때로 수정되어야 한다.
낡은 원칙을 지키려다 위기를 관리하지 못해 조직이 무너지고 만다면, 그보다 주객전도된 상황은 없을 것이다.
혁신을 위해서는 누구나 원칙에 도전할 수 있어야 한다. 누구나 불순분자를 자처하고 권력에 대들 수 있어야 한다.
만일 조직 내에서 도전자, 혁신가를 찾기 어렵다면, 조직 밖에서라도 이식해야 한다.
법전을 난생 처음 펼쳐 본 사람이야말로 법의 불합리성을 읽어내고 지적할 수 있다.
'안 본 눈 삽니다'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잊지 말고 기억할 것은?
원칙은 '꼭 지켜야 할 기준'이다. 하지만 원칙이 복잡한 현실에 적용될 때는 늘 예외가 생긴다.
원칙에 통제력이 있으려면 감시자들이 역할을 잘 수행해야 하므로 피감시자들과의 권력 관계가 생긴다.
원칙에 도전하는 것은 이 권력에 도전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조직 내에서 도전자나 혁신가가 생기기 어렵다.
혁신을 아웃소싱하거나 '오픈 이노베이션'을 추구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