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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328-소통 (8월업로드)

posted Mar 28, 2022, 5:47 PM by hyoo@crevate.com   [ updated Jun 30, 2022, 12:05 PM by Sung Youn PAK]


[1]뼈대


공동체에 무슨 문제가 있을 때마다 지목되는 원인이 '소통의 부재'이다.
마치 소통만 되면 만사 오케이라는 식이다. 그런데 꼭 소통을 해야 화합할 수 있을까?
부처님은 '염화시중의 미소'라 하여 별다른 소통 없이도 제자들에게 뜻을 전하지 않았는가?
소통이 무엇이기에 너도나도 그 필요성은 외치면서도 막상 나서기를 꺼리는 걸까?

소통의 사전적 의미는 '막히지 아니하고 잘 통함', '뜻이 서로 통하여 오해가 없음'이다. (https://ko.dict.naver.com/#/entry/koko/6c58c9ea49ac4e82959a40bc1d91343e)

두 번째 의미는 흔히 말하는 '의사소통' 즉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뜻이 서로 통함'과 같은 뜻으로 우리가 주로 사용하는 의미이다. 한편 첫 번째 의미는 주어가 없어 무엇이 잘 통한다는 말인지 확실치 않다. 그런데 사전에서 비슷한 말로 '교통'(서로 오고 감. 또는 소식이나 정보를 주고받음), 교류, 왕래 등을 제시하는 것을 보면, 그 주어는 사람이나 소식, 정보인 것 같다. 교통의 요충지에 사람이 많이 오가면 자연히 소문, 소식이 떠돌고, 정보가 유통되기 마련이니 이 현상을 한 단어로 지칭할 만한 것이다. 그러한 소통(1)의 장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소통(2)일 것이다. 즉, 많은 사람이 오가는 곳에 가서 정보를 캐내려 해봤자, 말이 통하지 않으면 알아듣지도 못하며 맥락을 모르면 오해하기 마련이다.

영어로 communicate는 (특성, 기분, 정보 등을) '전하다, 주다'의 뜻으로 1520년대부터 쓰였다 한다. (https://www.etymonline.com/word/communicate#etymonline_v_28434)
이는 라틴어 communicare 즉 '나누다, 알려주다, 공통되게(common) 만들다'에서 온 말이다.

한자로 소통(疏通)은 소통할/트일 疏에 통할 通을 쓴다.
疏는 발 소(疋) 자와 깃발 류(㐬) 자가 결합한 모습으로, 㐬의 본래 뜻인 '떠내려가다', '흐르다'에 발을 뜻하는 疋가 더해져 '길을 가는 것이 물 흐르듯 순조롭다, 막힘이 없다'라는 뜻이다. 通은 쉬엄쉬엄 갈 착(辶)에 길 용(甬)이 결합한 모습으로, 甬은 고리가 있는 종을 뜻하여 通은 원래 '(속이 텅 빈 종처럼 뻥 뚫린) 곧게 뻗은 길'을 뜻한다. 길이 뚫려있으니 이동하기 수월하고 거침이 없다는 뜻에서 '통하다, 내왕하다'라는 뜻이 되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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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쓰기


공동체에 문제가 있을 때마다 꼭 '소통의 부재' 탓을 하곤 한다.
마치 소통만 되면 만사 오케이라는 식이다. 그런데 꼭 소통을 해야 화합할 수 있을까?
부처님은 '염화시중의 미소'라 하여 별다른 소통 없이도 제자들에게 뜻을 전하지 않았는가?
소통이 무엇이기에 너도나도 그 필요성은 외치면서도 막상 나서기를 꺼리는 걸까?

소통의 사전적 의미는 '1)막히지 아니하고 잘 통함', '2)뜻이 서로 통하여 오해가 없음'이다.
두 번째 의미는 흔히 말하는 '의사소통' 즉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뜻이 서로 통함'과 같은 뜻으로 우리가 주로 사용하는 의미이다.
한편 첫 번째 의미는 주어가 없어 무엇이 잘 통한다는 말인지 확실치 않다.
그런데 사전에서 비슷한 말로 '교통'(서로 오고 감. 또는 소식이나 정보를 주고받음), 교류, 왕래 등을 제시하는 것을 보면, 그 주어는 사람이나 소식, 정보인 것 같다.
교통의 요충지에 사람이 많이 오가면 자연히 소문, 소식이 떠돌고, 정보가 유통되기 마련이니 이 현상을 한 단어로 지칭할 만한 것이다.
그러한 소통(1)의 장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소통(2)일 것이다. 즉, 많은 사람이 오가는 곳에 가서 정보를 캐내려 해봤자, 말이 통하지 않으면 알아듣지도 못하며 맥락을 모르면 오해하기 마련이다.

영어로 communicate는 (특성, 기분, 정보 등을) '전하다, 주다'의 뜻으로 1520년대부터 쓰였다 한다.
이는 라틴어 communicare 즉 '나누다, 알려주다, 공통되게(common) 만들다'에서 온 말이다.

한자로 소통(疏通)은 소통할/트일 疏에 통할 通을 쓴다.
疏는 발 소(疋) 자와 깃발 류(㐬) 자가 결합한 모습으로, 㐬의 본래 뜻인 '떠내려가다', '흐르다'에 발을 뜻하는 疋가 더해져 '길을 가는 것이 물 흐르듯 순조롭다, 막힘이 없다'라는 뜻이다.
通은 쉬엄쉬엄 갈 착(辶)에 길 용(甬)이 결합한 모습으로, 甬은 고리가 있는 종을 뜻하여 通은 원래 '(속이 텅 빈 종처럼 뻥 뚫린) 곧게 뻗은 길'을 뜻한다.
길이 뚫려있으니 이동하기 수월하고 거침이 없다는 뜻에서 '통하다, 내왕하다'라는 뜻이 되었다 한다.

영화 <아바타>의 나비족은 서로의 촉수를 연결하여 직접 교감한다. 인간으로 따지면 뇌 속의 뉴런을 연결하여 타인의 생각과 내 생각을 '동기화'하는 것이다.
이처럼 완전한 동기화, 완전한 공감 상황에서는 말도 글도 어떤 소통의 수단도 필요 없겠지만, 인간에게는 나비족의 촉수가 없다.
인간의 의사전달 과정에서 오해와 잡음은 끊이지 않는다. 상황과 맥락이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잘못 보낸 글자 하나 탓에, 또는 음질이 안 좋아서 오해가 생기기도 한다.
이렇듯 나의 뜻을 타인에게 100% 곧이곧대로 전달하기는 매우 어렵다. 따라서 오해를 최대한 줄이는 방식으로 의사를 전달하고 공유해야 한다.

소통은 왜 어려운가? 오해를 줄이기 어렵기 때문이다.
오해를 줄이기 위해 메시지를 최대한 자세히 전달한다고 해 보자. 괜히 TMI라고 느껴져 오해의 소지를 만들 수도 있다.
그렇다고 메시지를 너무 간결하게 전달하면? 권위적이고 차가운 인상을 줄 수 있다.
결국 나의 메시지 하나하나는 단순한 메시지가 아니라 나라는 인간의 이미지를 전달하는 것이고, 그 이미지를 해석하는 것은 청자이기에, 오해의 소지를 100% 차단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소통은 '타자' 간에 일어나는 일이기에 이러한 한계는 필연적이다.

최대한 나를 잘 이해해주는 사람들, 오직 가족이나 친구들과의 소통만 하고 산다면 어떨까?
계속해서 비슷한 이야기만 이어질 것이다.
오해도 줄고 내 말이 알아서 잘 이해되겠지만, 그런 삶에서 의미나 재미를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늘 비슷한 자리에서 맴돌 뿐이다.
낯선 사람, 나와 성장 및 생활 배경이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할수록 더욱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과는 만나는 것 자체가 어렵고 만나더라도 공감대를 찾기가 어렵다. 오해가 생길 위험도 크다.
즉, 개인의 성장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큰 오해를 감수해야만 정말로 의미 있는 소통을 할 수 있다. 소통의 딜레마다.

조직 내부의 소통은 어떤가?
직급에 따라 기대하는 소통의 범주와 내용이 다름은 물론, 관심사나 삶의 목표도 다르다. 오해가 적을 리가 없다.
하지만 그러한 오해를 감수하고 서로의 차이를 인정할 때 정말로 의미 있는 소통, 조직의 혁신을 지향하는 소통을 할 수 있다.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접근조차 하지 않으려 든다면, 그래서 말 통하는 사람끼리만 뭉친다면, 그 조직은 발전이 없다.
그러니 앞으로 공동체의 문제 원인으로 '소통의 부재'를 지적할 때는 그 앞에 '진짜'라는 말 한 마디를 붙이자.
큰 오해를 감수하는 진짜 소통만이 조직을 발전시키기 때문이다.


0629

공동체에 문제가 있을 때마다 꼭 '소통의 부재' 탓을 하곤 한다.

마치 소통만 되면 만사 오케이라는 식이다. 그런데 꼭 소통을 해야 화합할 수 있을까?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잖아'라는 가사처럼 이심전심할 수는 없을까?

소통이 무엇이기에 너도나도 그 필요성은 외치면서도 막상 나서기를 꺼리는 걸까?

 

소통은 오해 없는 것

소통의 사전적 의미는 '1)막히지 아니하고 잘 통함', '2)뜻이 서로 통하여 오해가 없음'이다.

두 번째 의미는 흔히 말하는 '의사소통' 즉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뜻이 서로 통함'과 같은 뜻으로 우리가 주로 사용하는 의미이다.

한편 첫 번째 의미는 주어가 없어 무엇이 잘 통한다는 말인지 확실치 않다.

그런데 사전에서 비슷한 말로 '교통'(서로 오고 감. 또는 소식이나 정보를 주고받음), 교류, 왕래 등을 제시하는 것을 보면, 그 주어는 사람이나 소식, 정보에 한정되는 것 같다.

교통의 요충지에 사람이 많이 오가면 자연히 소문, 소식이 떠돌고, 정보가 유통되기 마련이니 이 현상을 한 단어로 지칭할 만한 것이다.

그러한 소통(1)의 장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소통(2)일 것이다. 즉, 많은 사람이 오가는 곳에 가서 정보를 캐내려 해봤자, 말이 통하지 않으면 알아듣지도 못하며 맥락을 모르면 오해하기 마련이다.

 

한자와 영어에서의 '소통'

영어로 communicate는 (특성, 기분, 정보 등을) '전하다, 주다'의 뜻으로 1520년대부터 쓰였다 한다.

이는 라틴어 communicare 즉 '나누다, 알려주다, 공통되게(common) 만들다'에서 온 말이다.

한자로 소통(疏通)은 소통할/트일 疏에 통할 通을 쓴다.

疏는 발 소(疋) 자와 깃발 류(㐬) 자가 결합한 모습으로, 㐬의 본래 뜻인 '떠내려가다', '흐르다'에 발을 뜻하는 疋가 더해져 '길을 가는 것이 물 흐르듯 순조롭다, 막힘이 없다'라는 뜻이다.

通은 쉬엄쉬엄 갈 착(辶)에 길 용(甬)이 결합한 모습으로, 甬은 고리가 있는 종을 뜻하여 通은 원래 '(속이 텅 빈 종처럼 뻥 뚫린) 곧게 뻗은 길'을 뜻한다.

길이 뚫려있으니 이동하기 수월하고 거침이 없다는 뜻에서 '통하다, 내왕하다'라는 뜻이 되었다 한다.

 

인간 소통의 한계

영화 <아바타>의 나비족은 서로의 촉수를 연결하여 직접 교감한다. 인간으로 따지면 뇌 속의 뉴런을 연결하여 타인의 생각과 내 생각을 '동기화'하는 것이다.

이처럼 완전한 동기화, 완전한 공감 상황에서는 말도 글도 어떤 소통의 수단도 필요 없겠지만, 인간에게는 나비족의 촉수가 없다.

인간의 의사전달 과정에서 오해와 잡음은 끊이지 않는다. 상황과 맥락이 오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하지만, 잘못 보낸 글자 하나 탓에, 또는 음질이 안 좋아서 오해가 생기기도 한다.

이렇듯 나의 뜻을 타인에게 100% 곧이곧대로 전달하기는 매우 어렵다. 따라서 오해를 최대한 줄이는 방식으로 의사를 전달하고 공유해야 한다.

소통은 왜 어려운가? 오해를 줄이기 어렵기 때문이다.

오해를 줄이기 위해 메시지를 최대한 자세히 전달한다고 해 보자. 괜히 TMI라고 느껴져 오해의 소지를 만들 수도 있다.

그렇다고 메시지를 너무 간결하게 전달하면? 권위적이고 차가운 인상을 줄 수 있다.

결국 나의 메시지 하나하나는 단순한 메시지가 아니라 나라는 인간의 이미지를 전달하는 것이고, 그 이미지를 해석하는 것은 청자이기에, 오해의 소지를 100% 차단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소통은 '타자' 간에 일어나는 일이기에 이러한 한계는 필연적이다.

 

소통의 딜레마

최대한 나를 잘 이해해주는 사람들, 오직 가족이나 친구들과의 소통만 하고 산다면 어떨까?

계속해서 비슷한 이야기만 이어질 것이다.

오해도 줄고 내 말이 알아서 잘 이해되겠지만, 그런 삶에서 의미나 재미를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늘 비슷한 자리에서 맴돌 뿐이다.

낯선 사람, 나와 성장 및 생활 배경이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할수록 더욱 새로운 세계가 열린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과는 만나는 것 자체가 어렵고 만나더라도 공감대를 찾기가 어렵다. 오해가 생길 위험도 크다.

즉, 개인의 성장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큰 오해를 감수해야만 정말로 의미 있는 소통을 할 수 있다. 소통의 딜레마다.

 

조직 내부의 소통

조직 내부의 소통은 어떤가?

직급에 따라 기대하는 소통의 범주와 내용이 다름은 물론, 관심사나 삶의 목표도 다르다. 오해가 적을 리가 없다.

하지만 그러한 오해를 감수하고 서로의 차이를 인정할 때 정말로 의미 있는 소통, 조직의 혁신을 지향하는 소통을 할 수 있다.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접근조차 하지 않으려 든다면, 그래서 말 통하는 사람끼리만 뭉친다면, 그 조직은 발전이 없다.

큰 오해를 감수하는 진짜 소통, 대담한 소통만이 조직을 발전시킨다.


그래서 잊지 말고 기억할 것은? 

소통이란 오해 없이 의사를 공유하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에게는 직접 뇌를 동기화할 수단이 없으므로 오해 없는 이상적 소통이란 불가능하다.

그나마 나와 비슷한 경험과 삶을 공유하는 사람들에 한정하여 소통하며 산다면 오해는 적겠지만, 성장과 혁신을 바라기는 어렵다.

큰 오해를 감수하고도 대담하게 소통해보려 노력해야만 혁신을 지향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