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념어사전은 사어 심폐소생술 사람들이 쓰지 않아서 죽은 말을 사어(死語)라고 한다. 그런데 분명히 자주 쓰이는데, 아무도 그 의미를 제대로 모르는 말이 있다.이런 말도 어떤 의미에서는 죽은 말이다. 그 말만의 느낌, 생기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추상적인 말이 너무 많이 쓰이다 보면 쉽게 뜻을 잃고 사소한 말로 전락한다. 예컨대 모두가 인사치레로 '사랑합니다'라고 한다면, 사랑을 원래 뜻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사라질 것이다. 개념어사전은 이들 '현대판 사어'들의 본래 정의와 맛을 되살리는 연재물이다. 크리베이트가 정의합니다, '혁신'마저 죽기 전에 추상적인 말은 모두가 동의하는 뜻을 정의하기 어려워서 아예 시도조차 하기 어렵다. 하지만 정의되지 않은 용어를 목표로 삼는 것은 그저 좋은 말 퍼레이드에 불과하다. 모두가 혁신을 지향한다고 하지만, 혁신의 정의를 말하는 사람은 적다. 크리베이트는 개인과 기업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생산하여 혁신하도록 돕는 회사이다. 그래서 오늘 개념어사전에서는 크리베이트의 방식대로 혁신을 정의해보고자 한다. 사전적 정의 속 여러 낱말 혁신이란 '묵은 풍속, 관습, 조직, 방법 따위를 완전히 바꾸어서 새롭게 함'이다. 단어가 많이 나오는데 하나씩 살펴보자. '묵은'은 '시간이 오래된'이라는 뜻인데, 시간은 상대적인 것이므로 '기존의, 이미 존재하던'이라고 해석하기로 한다. '풍속'이나 '관습'은 '사회의 오랜 습관'이요, '습관'은 '어떤 행위를 오랫동안 반복하며 저절로 익혀진 행동 방식'이다. '조직'은 '목적을 이루기 위한 집단' 또는 그 구조를 뜻하며, '방법'은 '어떤 일을 하거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취하는 수단이나 방식'이다. '새로움'은 '전과 달리 생생하고 산뜻하게 느껴지는 맛이 있음'을 뜻한다. 문답으로 혁신 정의하기 문답으로 혁신을 더 구체적으로 정의해보자. Q. 혁신의 대상은 무엇인가? A. 이미 존재하던 사회적 습관, 집단의 구조, 목적 달성의 방법이다. '이미 존재하던' 것이 아니면 혁신할 수 없다. 즉 혁신의 대상은 미지의 무언가나 먼 미래의 무언가가 아니다. 현실에서 인간이 파악하는 무언가다. 또, 혁신은 개별적, 일시적인 대상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다. 이런 대상에게는 혁신보다는 '수리' '개선' '조정' 등의 말이 어울린다. 혁신은 한결 집단적, 지속적인 대상과 어울린다. Q. 혁신의 방법은 무엇인가? A. '완전히 바꾼다'. 이는 처음부터 끝까지 전혀 다른 성질의 것으로 대체한다는 뜻이 아님에 주의해야 한다. '완전히'란 '모자람이나 흠이 없이'라는 뜻으로, 완전히 바꾼다는 것은 바꾸기 이전과 비교하여 특별히 부족함이 없다는 뜻이다. 예컨대 회사의 제품 검증 프로세스를 혁신한 후, 제품 하자가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늘어났다면 그것은 혁신이라 볼 수 없다. 단지 디자인이 예뻐진다고 혁신이 아니다. 바꾼 후에도 기존 이상으로 본래의 목적을 달성해야 한다. 정리하면, 혁신이란 '현실에서 인간이 파악하는' '집단적, 지속적인 대상을' '변화 후에도 기존 이상으로 본래의 목적을 달성하도록' '새롭게 하는 행위'를 뜻한다. 한자와 영어로 쓴 혁신 혁신(革新)은 가죽/고칠 혁(革)에 새로울 신(新)을 쓴다. 革은 동물의 가죽을 손으로 펼치는 모습으로, 가죽을 가공하는 과정을 나타내어 '가죽, 펴다, 고치다'라는 뜻이다. 新은 도끼(斤)로 나무(木)를 베어 땔감으로 만드는 모습으로, '새로운 물건을 만듦'으로 뜻이 확장되었다. 영어로 혁신은 innovation이다. 15세기 중엽 innovacion은 'restoration(회복, 복원), renewal(갱신, 재개발)'의 뜻으로 쓰였다. 이는 라틴어 innovare(교체하다, 갱신하다)에서 온 것으로, innovare은 'into'라는 뜻의 'in-'과 'new'라는 뜻의 'novus'의 합성어이다. '새로운 변화, 실험적 변화, 새롭게 소개된 것'을 뜻하게 된 것은 1540년대부터이다. 창의와 혁신의 관계 창의는 '새로운 의견을 생각하여 냄. 또는 그 의견'이다. 즉 새로운 아이디어, 또는 그것을 내는 과정인 아이데이션을 지칭한다. 창의를 현실에 적용하면 혁신이 되기도 한다. 창의를 현실에 적용한다는 것은 단순히 새로운 아이디어를 활용해 제품이나 서비스를 기획/개발한다는 것만 의미하지는 않는다. 새로운 아이디어가 죽지 않고 살아남는 환경, 모든 구성원이 최고의 에너지로 아이데이션에 참여하는 문화를 조성하는 과정에서 조직의 혁신이 이루어진다. 그렇게 지속적으로 습관과 구조를 혁신하는 조직은 '혁신적'이라 할 수 있다. 혁신적인 조직은 유연하므로 새로운 아이디어에 도전하고 실험하기 유리하다. 정리하면, 창의를 실천하는 과정에서 혁신이 이루어지며, 혁신적 조직은 창의를 실천하기 유리하다. 창의와 혁신은 선순환하며 조직과 구성원의 유연성, 문제해결 능력, 현실 적응력을 키운다. 개선, 혁신, 개혁, 혁명 4형제 혁신과 헷갈리는 단어인 '개선' '개혁' '혁명' 그리고 '수리' '조정' '발명'의 뜻을 각각 살펴보며 비교해보자. 개선은 '잘못된 것이나 부족한 것, 나쁜 것 따위를 고쳐 더 좋게 만듦'이다. 포괄적인 말이라서 다른 형제들과 비교하면 어감이 가장 흐릿하다. 개혁은 '제도나 기구 따위를 새롭게 뜯어고침'으로, '제도'나 '기구'라는 낱말에서 알 수 있듯 주로 국가적인 차원에서 쓰인다. 혁명은 '헌법의 범위를 벗어나 국가 기초, 사회/경제 제도, 조직 따위를 근본적으로 고치는 일', '이전의 관습이나 제도, 방식 따위를 단번에 깨뜨리고 질적으로 새로운 것을 급격하게 새우는 일'로, 국가나 사회 등 거시적인 측면에 급격한 변화를 일으키는 운동을 뜻한다. 보통 변화의 규모나 급진적인 정도에 따라서 '개선<혁신<개혁<혁명' 정도로 나열된다. 수리, 조정, 발명과의 차이 수리는 '고장 나거나 허름한 데를 손보아 고침'이다. 그러면 수리와 혁신의 차이는 무엇일까? 개별 사물의 고장은 조직/방법의 그것보다 구체적이며, 상대적으로 쉽게 파악하고 쉽게 고칠 수 있다. 또한 수리의 대상은 고장 나거나 낡은 것이지만, 혁신의 대상은 꼭 그럴 필요는 없다. 이미 존재하던 것이면 된다. 조정은 '어떤 기준이나 실정에 맞게 정돈함'이다. 대상을 현실이라는 틀에 맞추는 작업으로, 나온 곳은 집어넣고 부족한 곳은 채워 넣는 것이다. 반면 혁신에는 기본적으로 틀, 기준, 한계가 없다. 현실이라는 틀이 바로 혁신의 대상이다. 발명은 '아직까지 없던 기술이나 물건을 새로 생각하여 만들어 냄'이다. 발명의 대상은 기술이나 물건이다. 발명은 주로 특허를 통해 국가의 인증을 받는다. 따라서 발명은 '아직까지 없던' 것을 만들어냈음을 증명하는 과정이 매우 중요하다. 비슷해보여도 다르다는 점을 설득해야 한다. 반면 혁신에서 중요한 것은 '혁신 전후의 차이, 그리고 혁신 후에도 잘 작동하는지'이지, '전에 없던 것으로 바꾸었는지'는 아니다. 물론 전에 아예 없던 것을 생각해내서 적용했다면 참으로 멋진 도전이지만, 언제나 그러한 천재적 창의력을 발휘할 수는 없으니 다른 혁신의 선례도 참조해야만 한다. 혁신가는 거인의 어깨 위에 앉기를 주저하면 안 된다. 정리1) 혁신은 지속적, 집단적인 것이므로 각오가 필요하다 혁신은 현실에서 여러 사람이 지속적으로 따르는 규칙, 방법 등을 새롭게 하여 목적을 더 잘 이룰 수 있게 만드는 행위이다. 개별적, 임시적인 대상에게 혁신이라는 말은 잘 어울리지 않는다. 예컨대 특정 제품을 혁신한다는 말은 너무 거창하다. 제품을 '개선'이 아니라 '혁신'한다고 하려면, 적어도 그 제품과 관련된 주제나 공정, 지식과 절차를 새롭게 하려는 각오까지 되어 있어야 한다. 정리2) 혁신가는 현실을 잘 관찰해야 한다 대체로 현실에 뒤떨어진 것이라 혁신의 대상으로 선정되는 경우가 많지만, 꼭 그럴 필요는 없다. 즉 현실에서 무난하게 작동하고 있는 것이라도 얼마든지 혁신의 대상이 될 수 있다. 따라서 혁신가는 지금 문제 없어 보이는 대상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어떻게 새롭게 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정리3) 혁신의 최종 목적은 더 나은 문제 해결이다 혁신은 현실이라는 틀을 바꾸는 일이기에 그 자체의 기준이나 한계는 없다. 그러나 그 틀을 마구잡이로 망쳐 놓고 혁신이라고 우겨도 된다는 뜻은 아니다. 틀은 문제 해결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므로, 새로운 틀을 만들 때에도 그 목적을 지향해야 한다. 혁신 전후를 비교했을 때, 혁신 후가 전보다도 문제 해결을 못한다면 그것은 혁신이 아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