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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외) [CEO 모두로그] 원칙의 원칙 (20220324)

posted Mar 24, 2022, 10:08 AM by hyoo@crevate.com   [ updated Jul 25, 2022, 12:04 PM by Sung Youn PAK]
어느 때보다도 ‘원칙’과 ‘공정’이 중시되고 있습니다.
원칙과 관련하여 11년 전 제가 썼던 글이 있어 여러분과 생각을 나누고자 공유합니다.
이것도 너무 옛날 같아서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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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이슈는 <나는 가수다>라는 방송이다.
이 방송이 문제가 된 이유는 정해진 룰을 깼기 때문이다.
즉 김건모가 탈락 대상인 7위가 되자 방송에서 재도전이라는 룰을 새로 만들었는데, 이에 대한 반감이 확산되었기 때문이다.
김건모 본인도 비판을 받았고, PD도 경질됐다.
 
내가 김건모였다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만약 공연 전에 내가 탈락했을 경우를 가정해봤다면, 재도전이 허락된다고 해도 사람들의 반응이 싸늘할 수 있다는 것까지 생각이 미쳤다면 아름다운 퇴장을 했을 것이다.
탈락을 꿈에도 생각지 않았을 수도 있다. 내가 그 입장이었다면 당황하며 주변의 조언을 따랐을 것 같다. 아마 김건모씨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나 역시 최악의 상황을 별로 상정하지 않는 편인데, 이번 사태를 보며 항상 최악의 시나리오는 준비해 두어야 하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사실 나의 생각은 사람들이 참 별 것도 아닌 것에 발끈한다는 것이었다.
처음부터 좋은 노래 듣자는 취지의 방송이었는데, 재도전을 준다는 게 그렇게 천인공노할 일인가.
세상에 중요한 일들이 참 많은데, 특히 이번 일이 이슈가 된 이유가 무엇일까.
평소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이 나라의 현실에 염증을 느껴서? 3주를 기다린 게 억울해서?
각자 다양한 견해를 가질 수 있겠지만, PD가 경질될 정도인지는 의문이다.

그러면서 대체 ‘원칙이라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떨어지기로 했으면 떨어지는 게 원칙인가?
혹은 더 좋은 음악을 듣는 게 더 중요하니까, 더 좋은 음악을 듣는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재도전이라는 원칙은 대원칙의 하위 원칙 정도로 치부하고, 하위 원칙을 약간 변경하는 건 허용되는 걸까?
무엇이 원칙이고, 그 원칙을 지켜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원칙을 지킨다는 게 그냥 일관성을 유지한다는 것과 무엇이 다른 것일까?
마이클 샌델 교수 정도는 되어야 이 문제를 풀 수 있을 것만 같다. 

원칙과 관련하여 공자의 일화를 공유하고자 한다.
공자가 길섶에서 오줌 누는 놈을 혼냈다고 한다. 그런데 길 한 복판에서 오줌 누는 놈을 보고선 그냥 지나쳤다고 한다.
제자들이 의아해서 ‘왜 길섶에서 오줌 누는 놈은 혼내고, 길 복판에서 오줌 누는 놈은 혼내지 않습니까’라고 물으니, ‘말이 통할 놈에게 말해야지.’라고 했단다.
정확히 문헌으로는 찾지 못했지만 꽤 유명한 동양학 하신 분께서 해 주신 이야기다.

‘오줌 누지 말라’가 원칙이어야 하는데, 그럼 원칙대로 오줌 누는 놈을 다 족쳐야지, 왜 누구는 족치고, 누구는 족치지 않았나? 공자는 원칙을 어긴 것 아닌가? 
어려운 문제이다. 대체 원칙이 뭔가? 지키는 게 원칙인가? 반드시 지켜야 하는가? 예외 없이?
언제 예외가 생기고, 언제 생기지 않는 건가? 그것은 누가 판단할 몫인가?

원칙이란 그냥 지키는 게 원칙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맥락이 중요할 것 같다.
맥락에 따라 원칙은 변화될 수 있다. 문제는 그 맥락을 어떻게 해석할 수 있는가인데, 여기에서 바로 내공이 필요하다. (요즘 말로 하면, '케바케'에도 내공이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나는 가수다> PD가 변칙을 허용한 게 더 큰 원칙을 지키는 행동인지 그렇지 않은지를 판단하는 기준이 대체 무엇이어야 하는가?

최대다수의 최대행복. 많은 사람들 즉 시청자들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 재도전이라는 예외 없이, 처음에 공언했던 대로 김건모를 탈락시키는 게 맞는 것인가? 
다수는 아니지만, 사실 그 프로에서 직접 노래하는 가수들이 가장 중요한 사람들이고, 그들이 느끼는 감정도 중요할 터. 이미 나름 끈끈한 유대를 형성한 그들에게 서바이벌 탈락은 정말 가혹할 것이다. 그들이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게 맞는 것 아닌가?
결국 그 프로그램이 최고의 노래를 듣기 위해서 만들어진 포맷이라면, 재도전이라는 변칙을 허용했을 때, 더욱 최고의 노래가 나올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사람은 공포로 성장하기보다는 스스로 움직일 때 성장한다. 그러니 재도전으로 칼 가는 김건모와, 나도 재도전할 수 있다는 희망을 품은 다른 가수들이 여유를 가지고 더 좋은 음악을 들려줄 수 있다면 이번의 결정은 훌륭하다고 볼 수 있지 않나?

결국 무엇을 원칙으로 할 것인지만 정하면 끝인 게 아니라, 무엇을 원칙으로 고수해야 하고, 무엇에 변칙을 허용해야 할지, 그것을 어떤 기준으로 할지도 고민해야 한다.
‘원칙의 원칙’이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