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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20 - 창조경제, 싸이가 대표 주자가 되면 안되는 이유

자다가 깨서 본 TV 토론 - 창조 경제. 보다가 패털들의 수준 이하 발언에 속이 뒤집힐 것 같아서 몇 자 끄적인다. 표 사장은 대본 외운 티나고, 보스턴컨설팅의 파트너인가 하는 사람은 sales를 염두한 탓인지 창조는 문화쪽, 혁신은 중공업 같은 산업에 해당한다고 하는 발언에는 까르르 한바탕 뒹굴었다. 이 거뜰. 내가 정리해 줄께. 창조 경제.

창조 경제란 무엇인가? 이를 정의하기 이전에 왜 창조 경제가 나올 수 밖에 없는지 부터 살펴봐야 한다. 창조 경제 이전을 모방경제라고 하는데, 이건 정말 무개념의 극치이다. 태곳적부터 창조성은 인간 본성의 본성으로 중요하지 않은 때가 없었다. 오늘날 역사가 존재하는 이유는 인간의 창조성을 통한 진보의 결과이다. 그런데, 왜 지금와 새삼스럽게 창조경제 창조 경제 하는 걸까? 

상황이 조금 바뀌었다. 이전에 빵 가게는 그냥 하던 대로 빵 잘 만들면 되었고, 연필 공장에서는 연필 잘 만들면 되었는데, 인터넷이 깔리고 쇼핑몰이 생기고 우리 집 동네 빵집보다 이 지역 어디 어디...심지어는 전 세계 어디 어디 빵집이 더 맛나. 더 싸. 이런 이유로 경쟁을 하게 된다. 이것이 너무나 당연한 서비스로 인식된다. 헤이브레드 같은 서비스는 뜨레쥬드나 파리 바게뜨 같은 빵이 아니라 정말 맛나는 동네 빵집을 너에게 먹여줄께! 가 핵심인데, 이런 서비스들이 나옴으로해서 경쟁이 점점 더 치열해진다. 생각해봐라. 그런 서비스가 없었으면 내가 부암동 어디 맛난 빵집을 한 번씩 찾아갈 생각은 해도 배달시켜 먹을 생각을 했겠는가? 그런데, 이 경쟁이 너무나도 치열해져서 범 지구적인 경쟁을 한다. 분유, 옷, 장난감, 가방...뭐든 이제는 다 인터넷을 통해 비교해서 더 좋은 품질의 더 좋은 가격으로 만날 수 있다. 누가 best deal을 싫어하겠는가? 소비자 입장에서는 천국과 같은 이 상황이 공급자 관점에서 바라보면 지옥이다. 옛날에 그냥 하던대로 만들어도 다 팔렸던 것들이 이제는 통하지 않는다. 소비자들에게 더 좋은 선택지가 전세계적으로 공급되고 있고, 이제는 하다못해 작은 구멍가게 마저 글로벌 경쟁을 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김영삼이 외치던 세계화가 이렇게 우리 곁에 실감나게 왔다. 어찌나 선견지명인지...

자, 공급자 입장에서는 이제 3가지 선택지가 있다. 이전에 팔던 거 가격 낮추든지, 가격은 그대로이지만 이전보다 훨씬 더 좋은 거 만들든지, 새로운 상품을 만들든지...가격은 낮추는 게 그나마 쉬워보인다. 그런데, 가격을 낮추려면 원가 절감을 해야 하는데, 이미 짤만큼 짠 상태라 마른 수건 더 쥐어짜는 격일테고...결국 컨설턴트를 고용해서 원감절감 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게 하면, 분명 아웃소싱 및 임금 삭감 같은 소리를 해달테고, 결국 차라리 내가 컨설팅을  하는 게 더 낫겠다로 결론이 날 것이다. 가격은 그대로, 하지만 품질은 더 좋게 라는 두 번째 전략은 초기에는 연구비용이 나중에는 마케팅 비용이 소요된다. 그리고, 더 좋게 한다고 한 그것을 소비자가 반드시 좋아하리라는 보장도 없다. 코카콜라도 실패할 수 있지않은가? 마지막, 세상에 없던 새로운 상품. 이건 돈도 많이 들고, 가장 위험하지만 베팅만 잘 되면 대박이 될 수도 있다. 즉 비용을 절감하거나 가치를 부여하거나 새로운 것을 만들지 않으면 이 경쟁에서 이길 재간이 없어진다. 당신이라면 무엇을 선택하겠는가? 선택지를 마치 여러 개 준 것 같지만, 사실 별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예전에는 안 그랬냐고? 옛날에도 물론 그랬지만 지금만큼 심하지 않았다. 예전에 아무리 그래봤자 로컬 기업 내에서의 경쟁이었고, 소비자가 개인적인 레벨에서 선택하는 것에도 한계가 있었지만 지금은 완전히 이야기가 달라졌다. 그래서, 옛날에는 효율이 좋은 것이 최선의 미덕이었다. 어디에서? 우리 지역 내에서. 그런데 이제는 전 세계적으로 이 효율경쟁을 해야 하고, 더 이상 효율로 승부수를 띄우기가 어려워졌다. 너무나 많은 상품들이 흘러 넘치고 있고 그 중에서 경쟁을 해야  한다. 

다시 관점을 소비자로 옮겨보자. 엄청나게 많은 선택지 중에서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하는 소비자에게 그래서 브랜드의 가치는 더욱 중요해진다. 나 역시 아기 유모차를 골라야 한다고 생각했을 때 무척 어려웠다. 선택이 거의 백만가지나 되었던 것 같다. 결국 그 선택의 어려움으로 선택하지 못하고 동생 꺼 받아쓰기는 하였지만...

어쨌든, 자, 창조 경제는 이 지점에서 나오는 것이다. 가장 위험하지만 선택하지 않을 수 없는, 남들이 전혀 생각하지도 못한 새로움으로 무장한 어떤 것을 내어 놓아야만 하는 상황. 이 치열한 경쟁의 시대에 작동 원리로 가장 중심 핵이 되는 것. 그것은 창조성이 되었다. 선택의 여지가 없다. 우리가 선택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다. 이것이 새로운 경제, 신 경제의 속성이고, 창조 경제는 여기에서 나오는 개념이다.

과거의 규모의 경제와 달라진 점은 이 창조 경제에서는 너무나 많은 선택지 속에서 전세계적인 offer 속에서  골라야 하기 때문에 이렇게 많아지면 많아질 수록 브랜드의 힘은 더욱 강력하며, 그래서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 이 신뢰는 규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인스타그램이 직원 십여명 남짓의 회사이지만, 모바일에서 사진이라는 신뢰를 가장 많이 확보하였기 때문에 그 정도의 가치를 인정 받은 것이다. 규모의 경제가 아닌 신뢰의 경제가 되어 버린 것이다. 

이 새롭고 혁신적인 것을 끊임 없이 만들어야 하는 것은 단순 ICT 뿐만이 아니다. 연필 회사부터 컴퓨터, 자동차 만드는 회사 모든 산업 전반에 걸쳐 새롭고 혁신적인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우리가 지금 보는 이 것은 창의, 혁신의 물결의 일부일 뿐이다. 아직 시작도 되지 않았다. 밤도 낮도 안자고 끊임없이 효율을 높여놨더니, 이제는 창의로, 혁신으로 경쟁해야 하는 세상이 온 것이다. 

크리베이트에게는 이 현상은 무엇인가? 당연히 기회이다. 

그런데, 이 와중에 그럼 우리는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는 것일까? 
경쟁의 글로벌화. 선택의 글로벌화가 가지고 온 세상은 남과 달라야 한다는 것이고 남과 다른 것으로 전 세계적으로 경쟁에 돌입하게 되니 먼저 우리의 삶은 더욱 팍팍해질 것이다. 내가 자는 이 시간에 남들은 공부한다는 식으로...내가 퇴근을 하고 우아한 삶을 즐기는 이 시간에도 남들은 새로운 것을 고민할테니까...전 세계 어딘가에서...이 경쟁은 정말 사람 피말리는 경쟁일 것이다. 자본주의 쳇바퀴는 그런 식으로 점점 속도를 낸다. 그리고 잠시라도 멈춘 사이, 그 사업이, 그 산업이 한방에 날아간다. mp3로 한 때 잘 나갔던 아이리버가 아이팟 한 방에 날아가는 거 봐라. 컨텐츠 기업? 야후가 한국에서 사업 접는 거봐라. 순식간이다. 그런 식으로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질테고, 우리의 삶은 더 퐉퐉해지겠쥐...

뭐야? 절망만 가득하다는 것인가? 창의의 시대. 혁신의 시대인데? 

늘 그렇듯이 세상이 어둠으로 뒤덮힐 때 한 줄기 실날 같은 희망의 빛 줄기로 우리는 역사를 갈아엎고 진보를 일구었다. 성장의 동력이 더이상 효율성이 아니라 창조성에 있을 때 우리에게 찾아온 한 줄기 실날같은 희망은 모든 사람은 창조적이라는 문구이다. 왜? 어째서? 이것이 희망이란 말인가? 

창조성이 너무나 중요해졌기 때문에 한 두사람의 머리에서 나오는 것으로는 해결이 안된다. 창의는 새로운 생각, 다른 생각에서 나오기 때문에, 한 방향으로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여러 방향으로 쳐다보는 것에서 나올 수 밖에 없고, 그래서 중앙집권식의 운영 방식에서 모든 사람이 발의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각각의 점들이 중요해지는 네트웍 방식으로 바뀔 수 밖에 없으며, 어떤 일에 대해서 사장이 제일 잘 알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분야를 담당하고 있는 담당자가 사장보다 더 나은 지식과 더 나은 경험과 더 나은 아이디어를 낼 수 있다. 즉 창의는 사장 한 사람의 변화로 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변화여야만 가능하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의 생각을 전하고, 그것을 소통할 수 있는 장이 더욱 중요해 질 것이다. 그래서 아이디어 주가 이 시점에서 나와줘야 한다 이거다. 공모전, 사내 게시판 따위로 도저히 쓰러담을 수도 없고, 그것은 마치 변화의 물결을 거부하고 손가락으로 둑을 막고 있는 모습에 비유지니...

다시 본론으로...그래서 창조경제 산하에서 우리는 가혹하리만큼 더 쎈 놈들과 더 쎄가 경쟁하느라 밤잠을 못 잘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가장 효율적이여서 천년만년 갈 것 같은 중앙집중화된 방식을 넘어서서 개개인의 아이디어가 존중 받고 그것을 자유로이 발산하는 네트웍 방식으로 사회적 패러다임은 변화될 수 밖다는 점이 우리에게는 희망이다. 그래서 창조경제는 역사적으로 보면 진보이다. 모든 역사의 진보는 결국 인간의 존엄을 드높이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기에 창조경제는 그 측면에서 괘를 같이 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흉내만 내고 끝날 수 있다. 하지만 성질 급한 한국인의 특성 상 창조경제라는 깃발을 들었으면 들불같이 번지고 확산될 것이다. 그리고 변화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가장 먼저 교육이 변화할 것이고, 그리고 경제가 바뀔 것이다. 하지만 그 기간이 5년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짧다. 

박근혜 정부가 창조 경제 깃발을 들었다면, 무엇부터 해야 할까? 년임이 없는 우리 나라 정치 상황 상 나는 창조 경제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깊은 성찰에서 나왔다면, 우리 나라가 창조 경제 입국을 하는 데 있어 가장 초보적이고 근본적인 변화를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시적인 성과 운운 하느라 ICT에 몇 조, 어디 산업에 몇 조. 이런 식으로 혈세 낭비하다가 성과가 없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이 크다. 내가 내는 세금인데, 남의 집 불구경처럼 안 된다. 정말 창조 경제를 진지한 입장에서 받아들인다면 창조 경제의 본질, 왜 나왔고, 그것이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교육을 필두로 한 판, 판갈이 해야한다.  그런 진지함이 없을 바에는 걍 정통부로 하든, 과학부로 하든 알아서들 하라그래. 

아 그리고 중요한 지점 하나 더! 싸이를 자꾸 창조경제의 대표인물로 꼽는 데 이건 마치 신문팔고, 노동자 하다가 서울대 법대 어렵게 가놓고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라는 상술에 놀아나는 꼴이다. 물론 싸이 개인이 초심으로 돌아가 뭔가 남다른 걸 해봐야 겠다 고민했고 그것이 전 세계를 통해 먹혔다는 것에 의미는 엄청나다. 그런데 마치 저넘봐라. 공부가 제일 쉬웠다쟎니? 너는 어째서 공부만 하면 되는데, 공부조차 못하니? 하는 것과 비슷하다. 너도 싸이처럼 되어봐. 아이디어를 내봐. 창의적이 되어봐. 하기 딱 좋기 때문에 창조경제의 대표주자로 싸이가 되면 안된다. 픽사, 고어택스, 구글 같이 온 직원이 창의적으로 출발했거나 변화하고 나서 엄청난 저력을 보여준 그런 모범이 대표주자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사람들은 창조경제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감을 잡을 수 있다. 하긴 우리 나라에서는 없군. 빨리 크리베이트가 그 모범이 되어야 겠다. 쩝. 

참, 이건 번외 생각인데, 결국 기술은 인터넷이라는 놈이 나오고 일찌감치 중앙집권식에서 네트웍식으로 바뀌었다. 결국 사회는 기술을 쫒아가는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드는군. 역시 세상, 삼라만삼은 다 연결되어 있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