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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8.16-지평을 넓힌다는 것

모든 인간이 자유로워 지길 꿈꾼다. 돈을 버는 목적을 물으면 열에 아홉은 여러가지 제약으로 부터 벗어나기 위해 돈을 번다고 하고, 여행을 왜 가고 싶냐고 물으면 자유로워 지고 싶어라고들 이야기 한다. 그런데, 그토록 고대하고 고대하던 자유를 얻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할지에 대해서는 잘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결론부터 이야기 하면,  자유로워지기 위해서는 지평을 넓혀야 한다. 

몸을 생각해 보자. 어릴 때  많이 했었던 어름쨍이라는 놀이가 있다. 자유로이 움직이다가 얼음 하고 외치면 옴짝 달싹 못하고 하던 동작을 그대로 멈춰 서 있어야 한다. 나의 반경은 아마 훌라우프 하나정도가 들어갈 넓이가 된다. 그 안에서 나는 자유로울 수가 없다. 얼음을 풀면 다시 자유의 몸이 되어 이러저리 뛰어다닐 수가 읽다. 
마음, 생각, 의식도 똑같다.  우리는 OO해야 한다는 많은 명제들을 지니고 산다. 어릴 때 부터 끊임없이 배웠기 때문에 부지불식간에 그것이 원래 내가 생각한 것이었는지 부모님이 선생님이 사회가 나에게 강제 주입한 것인지 인식하지 못한 채, OO 해야 한다는 명제 덩어리들을 산처럼 쌓고 살고 있다. 이것은 마치 얼음땡의 얼음과 같은 것이다.  얼을땡이 우리의 몸을 자유롭지 않게 했듯이 OO해야 한다는 우리의 정신을 자유롭지 못하게 만든다. OO해야 한다나 OO하지 말라나 다 똑같은 것이다. 

너는 이래야 한다. 너는 저래야 한다를 머리 속에 가득채우고 다른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안 그런데, 너는 왜 그런가? 를 탓하고 있다. 서로 생지옥이 따로 없다. 못 그러는 너가 한심해 보이고, 너 때문에 너 하나 때문에 내가 이렇게 고통스럽고, 그래서 밉고, 싫고, 저 새끼하나 없으면 나는 행복할 수 있는데 싶고...

이런 사람일수록 나 이런 사람이야. 가 굉장히 심하다. 예쁘고 잘 난 것만 보여주고 싶기에 어둡고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추잡함은 그림자로 꼭꼭 숨겨둔다. 그런데, 그 그림자는 숨길수록 반동이 더 크다. 누른 풍선이 더 빵 하고 터지는 듯. 그래서, 자신의 그림자를 다른 사람을 통해 보는 순간 그 사람에게 모든 것을 쏟아붓는다. 참지 못하고 맹비난을 한다. 그리고, 자신이 생각해 놓은 틀 안에 사람들을 집어넣는다. 당연히 세상 누구도 그 틀 안에 똑 맞아 떨어질 수 없다. 그 틀 안에 억지로 우겨너짐을 당한 이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두가지다. 맹렬히 자신의 온 힘을 다해 반항하든지, 수동적으로 그래 당해 줄께 모드로 좀비가 되든지...헬 게이트는 열리고 지옥의 악순환은 끊임없이 그 고리를 끊지 못한채 뱅뱅이를 돈다. 

평생 한 평 방안에 갖혀 산다면 얼마나 불편할까? 마찬가지로 우리의 의식이 한 평 방 안에 갖혀 지낸다면 얼마나 불편할까? 그런데 우리는  몸이 불편한 줄은 알아도, 정작 마음이 정신이 불편한지는 모른 채 그냥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살아간다.  아파트 평수 넓히는 것에 인생의 모든 것을 바치는 우리는 정작 자신의 정신의 평수를 넓히기 위해 얼마나 애쓰는 걸까? 정신의 평수를 넓히기 위해 현재 나의 정신의 방의 크기를 가늠하고, 그걸 깨 부수기 위해 과연 얼마나 노력할까? 

끊임없이 나의 지평을 넓혀야 한다. 쭉쭉 찢고 넓혀야 한다. 그래야 그 넓어진 공간에서 자유로울 수 있다. 

어떻게 지평은 넓어질 수 있는가? 내가 알고 있던 그것을 끊임없이 깨고 껍질을 벗고 털갈이를 하고 그래서 그런 활동을 통해 지평은 넓어진다. 책도 좋다. 책을 쓴 저자들은 어떤 분야만큼은 나보다 더 깊이 고민하거나 생각해서 책이라는 것을 내었을 것이고 그런 지식을 빨리 습득할 수 있는 좋은 매체이다. 그런 책을 읽을 때 사람들은 비판적으로 읽으라고 이야기 한다. 그런데 나의 경우에 비판적으로 책을 읽을라치면 책이 눈에 잘 안들어온다. 그래서 온전히 푹 빠져서 그 사람의 것을 그대로 다 흡수해 버리겠다는 심정으로 읽는다. 그래서 그 책을 읽으면 한동안 그 책에 경도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다양한 책을 읽으면 같은 주제라도 그 사람이 이야기 했던 것이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는 좀 다르다거나 하는 지점이 꼭 생긴다. 나는 그 지점에서 나의 지평이 넓어짐을 느낀다. 어 누구는 이렇게 이야기 하고, 누구는 이렇게 이야기 하고, 그럼 나는? 내 생각 내 머리가 돌아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내가 생각했었던 지점과 지금 내가 생각한 지점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문 하나가 부셔져 나가는 느낌아라고나 할까? 

나는 언제 이걸 습득했었는가? 아마 대학때였던 것 같다. 학회라는 것을 처음하면서 발제라는 걸 하고 여기까지는 다 한다. 서머리. 읽기 요약 정리하는 거니까. 누구는 좀 조리있게 말하고 덜 조리있고 이런 차이는 있어도 여기까지는 다 한다. 그런데 이 후 선배들이 니 생각은 뭐냐? 라는 걸 물어볼때 마다 죽고 싶었다. 모 내 생각이 뭐있어. 책에 잘 나와있구먼. 왜 자꾸 물어? 니 생각을 이야기 하라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또박또박 이야기 하는 내 또래를 보면 대체 뭘 먹으면 저렇게 똑부러지게 말을 잘 할까? 부러워만 했었는데...그렇게 자꾸 내 생각을 이야기 하고 내머리로 비판하고 뭐든지 내 머리로 해야 한다는 정도를 이해했었던 것 같다. 그러고, 질적 연구 수업을 들으면서 조용호 교수님이 연구자는 끊임없이 자신의 지평을 넓혀야 한다고 이야기 하는데 평범한 그 말이 참 나에게는 번개처럼 심장에 와서 꽂혔다. 나는 얼마나 그렇고 있는가? 반성도 되었고...

결국 끊임 없이 내머리로 고민하다 보면 이것 외에 다른 것이 있을 수도 있다는 가정. 선택할 수 있는 옵션이 하나가 아니라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다는 생각들이 시작되고 그 적용을 내가 아닌 남에도 하는 순간, 남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고 그냥 있는 그대로 그 사람을 인정하게 된다. 써 놓고 보니까 쉽지만 실제로는 쉽지 않다. 머리로는 쉽지만 몸은 쉽지 않다. 

자유를 꿈꾼다면 내 의식의 지평이 넓어져야 한다. 그렇게 넓은 지평 위에 광활한 대지위에 종횡무진할 수 있어야 한다. 지평을 넓히자. 지평을. 나의 의식의 지평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