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16-우리 안의 여성, 남성을 찾아서

  • 아니메는 저절로 움직이는 것, 안에 동력이 있는 것, 스스로 움직이는 것이라는 뜻이다. '영혼'이라고 하면 미신, 종교적인 냄새가 나기 때문에 사람들이 영혼이라는 단어에 거리를 두고, 중립적인 '에너지'로 번역해서 생각해 보겠다. 두고
  • 칼융은 스위스 사람, 독일어에는 남성과 여성이 있다. 그래서 아니메에 아를 더한 아니마는 여성이 되고, 무스를 더한 아니무스는 남성. 여성성과 남성성을 그렇게 구분한다. 
  • 칼융의 툴이 꽤 쓸만하기 때문에 이 툴을 쓰는 것이지, 칼융빠, 칼융홀릭이 되면 안된다. 이론이 독자성을 가지고 실제 존재하는 것을 무시하고 간과하면서 현실을 잘라내면 그것이 이데올로기가 된다. 이렇게 되는 것을 늘 경계하여야 하며, 우리의 생각이 쓰레기가 되지 않으려면 분별력을 가져야 한다. 
  • 인간은 실체에 가려진 베일을 벗어내기 위해 안감힘을 썼다. 그래서 철학이라는 것을 고안해 내었다. 서양에서는 이성을 통한 사유로 그 베일을 벗어던지려고 했다. 불교에서는 욕망을 제대로 보면 그 베일을 벗어던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연금술사들은 그 베일을 베일로 인지하면 그 베일이 녹아내려 나의 자양분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그들은 그것을 변환의 비의(미스테리)라고 불렀다. 
  • 직관이라는 것은 이론을 통과해서 아는 것이 아니라 온몸으로 아는 것이다. 내 몸에서 일어나는 느낌을 그대로 알아차리는 것. 바이올린 소리가 찌릿! 울컥! 소름 돋아! 이런 게 다 알아차리는 거. 이성보다 더 신뢰할 수 있는 것은 몸이다. 우리 몸의 진실의 잣대이다. 사실 몸은 구석구석 반응한다. 진실은 생명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랫동안 이성으로 판단한 우리는 이성으로 설명되지 않으면 알아차리지 못하고 싸잡아 주관적이지 않아? 객관적이지 않은데? 라고 이야기 한다. 그런데, 진실은 원래 주관적이다. 
  • 직관은 여성이 남성보다 더 발달한다. 남성은 사유를 통해 아는 반면, 여성은 다르다. 그래서  갈등이 빗어진다. 이 갈등에 대해서 남성은 두려워하거나 무시한다. 두려워 벌벌 떨거나 무시하거나. 나는 모르는데, 니가 알어? 그거 거짓말일꺼야. 무시한다. 
  • 남성과 여성은 다르다. 임신, 아이, 출산. 우리 몸은 앞 판과 뒷판이 있다. 앞판은 부드럽고 말랑말랑하고 보호에 적합하다. 수용적이다, 반면, 뒷판은 딱딱하다. 나 아닌 것과 나를 구분하는 구분이자 앞판을 버티게 하는 버팀목이다. 뒷판이 딱딱한 건 동물도 마찬가지이다. 고슴도치, 게껍데기, 고양이털. 그래서 뒷판은 늘 긴장하고 있고, 그것이 더 가면 공격적이다. 여성은 앞판이 남성은 뒷판이 더 발달되어 있다. 물론 앞판만 있는 사람도 없고 뒷판만 있는 사람도 없다. 밸런스의 문제이긴 하지만 말이다. 
  • 현대 사회는 앞판보다는 뒷판이 더 중요해졌다. 나와 타인을 구분하는 뒷판이 중요해 졌다함은 그만큼 더 경쟁적이 되었다는 말이다. 구석기 시대에는 남자는 밖에서 여자는 안에서 그런데 사회가 구조화되면서 성역활로 아예 구분이 되어져서 남자는 남성적인 일만, 여자는 여성적인 일만 하게 되어 있다가 현대에는 그 경계가 허물어 졌다. 남자는 여자처럼, 여자는 남자처럼 되어가는 것을 요구 받고 있다. 마치 완성의 방향으로 보여지기도 한다. 그런데 이것이 완성의 방향이 아니라 부자연스러운 억압으로 등판을 긴장시켜야 하면서 여성은 억압적이고 공격적이고 이런 방식이 부담스러지면서 여성이 남성적 부담을 떠 안으면서 스트레스가 생기고 아니무스에 사로잡히는 일이 발생한다. 
  • 이게 뭐가 나쁜가? 
  • 생명체는 태어나면서 가지고 있는 본성이 있다. 씨앗이 있다. 나무가 씨앗이 나서 뿌리에서, 줄기로, 잎으로 다시 씨앗으로 윤회를 하듯이 씨앙에 내장된 가능태로 뻗어나서 펼쳐지는 게 나무의 자기 실현인데, 우리는 자기 실현에 많은 방해를 받고 있다. 나의 씨앗대로가 아니라 엄마의 아빠의 바램대로 변형되기도 하고 왜곡되기도 하고...
  • 동그란 원을 떠올려 보자. 거기에는 껍데기가 있다. 이 껍질을 우리는 인격이라고 한다. 퍼소나. 가면. 사회적 인격이 된다. 그리고 그 속에는 씨앗이 있다. 껍질은 의식이 된다. 다른 사람의 말로든 너는 이런 거 잘해. 이래. 저래. 혹은 다른 사람의 표정으로든 의식이 된다. 그래서, 그 껍질을 우리는 나라고 생각하고 산다. 그런데, 껍질은 나의 일부이지 나의 전부는 아니다. 그런데, 그 껍데기를 나라고 생각하고 살면 나의 내재되어 있는 씨앗과는 다르게 사는 것이다. 
  • 안에 있는 씨앗이 확대되려고 하는데, 껍질이 딱딱하면 금이 간다.  껍질에 금이 간다는 것은 페르소나에 금이 간다는 뜻이고 이렇게 되면 병이 나거나 역활을 제대로 못해서 떨어져 나가거나 한다. 
  • 페르소나는 아니무스와 유착이 잘 된다. 같은 건 아니지만. 안 딱딱하면 반듯이 나는 이런 모습이어야 해. 라고 생각하지 않고 또 다른 모습으로 살면 되지 하고 유연할 수 있는데, 이게 딱딱하면 딱딱할 수록 상처가 더 심하다. 그래서 남성이 여성보다 상처에 더 취약하다. 
  • 껍데이기는 바뀔 수 있으나 다른 데 가서 엉뚱한 데로 간다. 왜곡이 일어난다. 그게 컴플렉스이다. 우리는 다 컴플렉스가 있다. 사회제도는 컴플렉스를 양산시키는 시스템이다. 그러고서는 내가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면 내가 죽든지 병나든지 나 스스로 해결하라고 한다. 
  • 사회는 씨앗의 어떤 것을 허용하고 어떤 것을 눌러 둔다. 1차적인 억압이 성차이다. 어릴적 구분은 없었는데 점점 여자는, 남자는 어때야 한다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던진다. 그래서, 그 씨앗의 어떤 부분이 밀려나면 의식이 안되고 있을 뿐이지 가만히 있지 않고 계속 움직인다. 그러다가 뭘하는지 자각이 없을 때 불쑥불쑥 나온다. 여성안에 있는 남성성이 자기 실현에 긍정적인 힘으로 작용할 수도 있고, 부정적인 힘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그런데, 자각이 안되면 대상에 투사가 될 수도 있다. 내 안에 있는 게 달라 붙어서 다른사람의 껍데기를 만들기도 한다. 이상형과 혐오형은 자기 바꿈만 하면 된다. 그 사람의 어떤 부분이 나를 끌어당기는지, 그것은 내안의 어떤 부분과 관련되는지 알아보자. 
  • 여자들은 남성들이 취약한 상처를 극복하는 영웅이 되기를 바란다. 
  • 교양있는 상이라는 것은 밖에서 주어진 틀이기 때문에 우리안의 상과 다른 경우가 많다. 교양은 부자연스러움을 내포하고 있다. 일시적이면 상관이 없겠지만 계속 되면 기능장애가 일어난다. 가지고 태어난 능력이 있는데 못 쓰는. 못살게 되는 거 순간이면 저항하지만 지속되면 포기한다. 그럼에도 두 눈 뜨고 견딜 수 없으면 잔다. 자면서 꿈을 꾼다. 꿈에 빠져 있으면 내가 기능장애인지 마저 망각한다. 
  • 영화 매트릭스를 생각해 보라. 꿈 속의 나는 자유롭다. 하지만 실제는 에너지원일 뿐이다. 전지이다. 
  • 대한 민국 교육은 기능장애 상태로 만드는 교육이다. 
  • 껍떼기는 타자가 아니다. 나의 일부라는 것을 자각해야 한다. 여기에 매달리지 말아야 한다. 일부라는 걸 자각하고 나면 이 모습이 아니여도 딴 모습으로 살 수 있기 때문에 훨씬 더 유연할 수 있다. 
  • 내 안의 능력을 자각하면 능력이 되지만, 자각하지 못하면 투사가 된다. 투사를 하면, 밖에서 찾는다. 밖에서 찾는 거 처럼 보이지만 그래서 내 안에 있는 걸 다른 사람한테 덮어 씌우지만 유통 기한이 지나면 실망하고 분노하고 증오한다. 밖에서 찾을 수 없다. 내가 내 상을 덮어 씌운 것일 뿐이다. 
  • 자각은 쉽지도 않고 오랜 시간의 과정과 노력이 필요하다. 자각이 일어나면 베일이 변환된다. 베일이 생명수가 된다. 이전과는 다른 삶을 살게 된다. 그래서, 자각이 필요하다. 자각을 해 보자는 것이 이 수업의 목표이다. 
  • 그림자란 또 무엇인가? 
  • 우리는 좋은 것과 나쁜 것. 잣대가 있다. 몸이 편한 것도 있고, 머릿 속으로 배운 것도 있다. 일치하면 좋치만, 불일치 하면 괴롭다. 사회화를 통해 그 좋고 나쁨을 받아드릴 수 밖에 없다. 나쁜 것이라고 배운 것이 내 안에서 일어나면 나는  그런 사람이 되면 안 되니까 밀어내기를 한다. 그것이 쌓이는 것이 그림자이다. 
  • 그림자가 많을 수록 표면적으로는 괜찮은 사람, 바람직한 인격을 갖추었다고 생각되는 사람. 왜냐하면 버린 것이 많은 사람이니까. 그런데, 그런 것들을 인정해 버리면 나의 껍데기에서 나는 인정 받지 못할꺼야. 라는 공포감 때문에 지하실 밑바닥으로 쳐 박아 둔다. 그런데, 이것 또한 에너지이기 때문에 움직인다. 옮아가면 전이 된다고 하는데, 나아닌 다른 곳에 옮기기를 좋아한다. 인형 묻기가 대표적이다. 인형에 묻고 비워버리는 것도 방법인다. 그런데 인형에 묻으려고 해도 내 안에 뭐가 있는지 알아야 한다. 
  • 에너지가 뭉쳐있다가 병이 날 수도 있다. 내 안의 인격이 양분화 되어 나를 덮칠 수도 있다. 잘 처리 해야 한다. 
  • 모든 살아있는 것은 사랑을 원한다. 무형의 에너지 조차 사랑을 원한다. 내안의 쓰레기 조차 사랑을 원한다. 
  • 운명의 역습. 내가 나를~~~. 응징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 자각을 하면 봐주기. 껌껌한 지하실에 후레시한 번 비춰주면 쓰다듬어주면 녹기도 하고 변환이 되어 쓰레기가 아니라 보물이 될 수 있다. 에너지가 넘쳐흐르는 사람이 될 수 있다. 변환의 신비이다. 쓰레기를 보물로 만들기가 가능하다. 그렬려면 의식의 불빛을 비추어라. 자각 하라. 
  • 자각이 일어나는 순간 변환이 금방 일어난다. 밖에 내놓기 꺼리는 건 그림자이다. 그 그림자도 에너지이기 때문에 돌봄을 받지 못하면 그 에너지를 밖으로 나가서 투사를 한다. 나라고 생각하지 않고. 
  • 구별하자. 운명에 끌려 다니는 거 없어진다. 우리의 시선이 더 명확하고 분명해 진다. 환상을 보는 게 아니라 실체를 보니까. 
  • 자기 실현이란 나를 누르고 있는 것을 치우고 나 자신에 도달하려는 과정이다. 나의 핵심과 연결되어 있는 과정이다. 그것과 연결되면 행복해진다. 강박이 없어지고 안에서 요구하는 대로 나 자신으로 살게 된다. 
  • 이미지에 부응해서 사는 게 아니라 나 자신으로 사는 것. 이걸 개별화 과정, 개성화, 개체화 과정이라고 한다. 
  • 다 개성을 가진 개체로 피어나는 과정이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