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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창식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2/18/2011021801338.html


"그럼요. 나는 고등학교 때 이미 공부가 뭔지 확실하게 알고 있었으니까. 그렇지만 지금 그때로 돌아가라고 하면 안 하죠. 지금 하는 음악이 너무 좋으니까."

―군대 있을 때 음악적으로 큰 깨달음이 있었다던데요.

"그게 운명이에요. 지금 생각하면 예고 중퇴한 게 대중음악 하기 위한 길막음이었던 것 같아요. 27세 때 병무청에서 7개월 방위 복무를 했는데 그때 미군방송(AFN)에서 흑인 아마추어 노래경연대회를 봤어요. 근데 나보다 잘하는 놈들이 정말 많은 거예요. 그때부터 외국 노래와 내 노래를 비교하니까 내가 못한다는 사실을 확실히 깨달았어요. 너무 분했고 큰 충격이었죠."

"
일주일간 펑펑 울면서 '나는 바보인가' 했죠. 울다 울다 지쳐서 넋이 반은 나갈 정도였죠. 그러다가 또 TV에서 전주대사습놀이를 보는데 거기 장원과 차석이 또 나보다 훨씬 잘하는 거예요. 그래서 분석을 시작했죠. 서양 음계는 고대 수학자인 피타고라스가 정리한 거예요. 그런데 국악을 분석해보니 꼭 그걸 따를 필요가 없다는 걸 알았죠. 그동안 배운 걸 모두 버리고 나만의 음악 이론을 만들었어요. 지금 내 음악에 비하면 서양음악은 아주 하잘것없는 음악이죠. 바흐·베토벤·브람스·모차르트 모두 기능적으로는 훌륭한 음악을 했지만 한 70점쯤 되는 음악이에요. 동양 음악도 똑같은 음악인데 그걸 몰랐으니까. 내가 클래식을 했다면 이런 이론은 만들 수가 없어요. 내 음악은 100점짜리 음악이에요."

―그 이론을 만든 뒤에 음악이 달라졌나요.

"동양과 서양의 요소가 모두 있는 음악을 만들기 시작한 거죠. '피리 부는 사나이'에서 "언제나 웃는 멋쟁이" 부분이 국악이에요. 그렇게 한 소절, '왜 불러'에서 두 소절, '고래사냥'에서 세 소절 식으로 국악을 점점 많이 도입한 거죠."

―그래서 음악이 독특해졌군요.

"그렇죠. 사람들은 왜 그런지 몰랐지만 어쨌든 달랐고 쇼킹했죠. 그러니까 천하에 없는 명성을 준다 해도 클래식으로는 안 돌아간다는 거예요."

―그 이론을 전수하고 있습니까.

"그러고 싶었지만 안 돼요. 음악을 하려면 자신보다 잘하는 놈이 있다는 걸 분하게 생각하고 울어야 하는데, 다들 자기가 최고인 줄 알아요. 몇몇 후배들한테 외국 가서 음악공부 하고 오라고 권하기도 했죠. 외국 다녀오면 자기 자신한테 실망하고 분해서 돌아와야 하는데, 최고인 줄 알고 돌아온다니까."

―책으로 남기면 전수가 되지 않을까요.

"그게 참 묘한데 책은 물론이고 어록으로 남겨도 나중에 악용돼요. 후배들이 그 책을 보고 모르면서 아는 척 가르치거든요. 인류 역사상 책으로 나온 게 쓸모가 별로 없어요. 책으로 뭔가 쓰면 안 썼을 때만 못한 거예요. 공자가 '춘추(春秋)'를 썼는데 조선시대 때 그놈의 '춘추'가 양반들에 의해서 얼마나 악용됐습니까. 노자가 쓴 '도덕경(道德經)'도 마찬가지예요. 사람들로 하여금 괜히 세상에 무관심하게 만들어 후대에 체제 유지를 위해 악용됐지, 아마."

인터뷰가 미궁(迷宮) 입구에 다다르고 있었다. 대중음악평론가 강헌이 "가왕(歌王) 조용필에 대적할 수 있는 단 한 명의 가수"라고 칭송했던 송창식은 지금 '도덕경'의 첫 구절 '도가도 비상도(道可道非常道·도를 도라고 말할 수 있으면 그것은 더 이상 도가 아니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 남자, 지금 조용필이 아니라 고대 중국의 사상가들과 대적하고 있다.

―악용될 게 두려워서 책으로 남기지 않는다는 뜻인가요.

"두려운 게 아니라 꼭 악용된다니까요. 좋은 건 흘러가도록 놔둬야 해요. 공자도 제자들에게 '이렇게 살면 되잖으냐' 하고 얘기하거나 '너 왜 그래?' 하면서 뺨이나 한 대 때렸으면 좋았을 텐데 그걸 다 책으로 쓰니까 문제를 일으키잖아요."

―'춘추'나 '도덕경'을 다 읽었습니까.

"안 읽었죠. 들어서 대충의 내용은 알아요. 그렇게 중요한 내용은 쓰면 안 되는 거예요. 농담은 써도 돼요. 중요할수록 쓰면 안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