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베이트는 무엇인가? 왜 크리베이트인가?
크리베이트에 대한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나던 중, 선사시대 사람들이 만들었던 초기의 토기 같은 것이 생각났다. 처음에는 흙을 뭉쳐 동그란 밥그릇를 만들기도 하고, 네모난 접시를 만들기도 하고, 어느날은 사발을 만드는데 이를 것이다. 그 중 한사람 쯤은 고민했을 것이다. 어떻게 하면 더 나은, 뭔가 다른 토기를 만들 수 있을까. 크리베이티브한 마인드의 소유자라면 토기 위에 빗살을 그렸을 것이다. 하트 모양, 구름 모양 같은 것들을 그려보았을 것이다. 아직 발굴되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크리베이터로 일한지 일주일이 조금 넘었지만 아직도 뭔가 모호하다. 우리 회사가 일하는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학원 선생을 하는 언니의 말마따나, 창의성은 어디서든지 발휘될 수 있다. 아이들을 가르칠때도, 화장실 청소를 할 때도, 공사장에서 벽돌을 나를 때도 창의성은 필요하다. 크리베이트는 모든 사람들에게 길잡이가 되어줄 수 있을까? 그렇다면 크리베이트는 천재인가? 우리가 남들보다 무엇이 얼마나 다르길래 그럴 수 있다는 것인가? 어떤 답을 찾을 수 있을까요? 그것을 나에게도 적용시켜 볼 수 있을까요? 나는 도대체 남들보다 얼마나 다르길 래 크리베이트인이 될 수 있는가? 모호한 질문들은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그러나 앞으로 하나씩 풀려 나갈 것이다. 다만 당장 크리베이트에 대해서 확답을 줄 수 있는 한 가지는, 우리가 지향하고 실천하는 창의와 혁신이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 만큼 가볍고 쉬운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무엇이든지 말해보고, 무엇이든지 해보고, 놀아보자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분명한 목적을 두고 말랑해진다. 전문적으로 말랑해질 수 있는 사람들이기에, 세상 모든 사람들이 말랑거릴 수 있도록 길잡이 역할을 해줄 수 있다. 흙 반죽을 쥐고 고민하는 사람, 빗살무늬 까지만 그리고 고민하는 사람이 이야기하는 목적에 귀를 기울일 것이다. 그리고 그 목적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로 인도할 것이다. 창의력은 어느 경우에서나 최선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크리베이트여야만 하는, 간단하면서도 절대적인 이유이다.
‘Yes, but’의 유혹을 피해가기란 쉽지 않다. 효율만을 중시하는 ‘빨리빨리 사회’에서 모든이의 생각을 들어주고 꼬리를 붙여주는 것은 자칫 효율과 멀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크리베이트는 비밀을 안다. 크리베이트 하는 것이야 말로 가장 효율적인 것임을.
세상을 지배하는 거대 논리들에게 등을 돌리자는 것은 아니다. 크리베이트는 그 거대 논리의 등을 타고 머리를 써보겠다는 것이다. 반항아가 아닌 똘똘이로, 세상에 이름을 남기기 위해서 크리베이트는 세상을 알기 위해 애를 쓴다. 변화를 누구보다 먼저 감지한다. 그리고 또 다른 변화를 창조하고 모두를 이끌어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은 어떨까? 어느 아이디어든 꼬리를 달고 있지 않은 것은 없다. 누군가가 낸 아이디어에 꼬리를 달아주면, 그것은 힘을 얻어 또 다른 꼬리를 문다. 이렇게 최선의 답이 탄생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좋은 답이 무엇일까(what)’만 생각한다. 그러나 크리베이트는 ‘좋은 답은 어떻게(how) 탄생할 수 있을까’를 먼저 고민하는 기업이다. 그러므로, 크리베이트다. 크리베이트를 크리베이트하게 접근해보자는 시도였는데 이로써 크리베이트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나요? 앞으로의 답도 크리베이트하게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
